모든 사람들이 돈을 버는 것에 지금처럼 열광하던 시기가 요 근래 있었던가. 주식, 재테크 서적이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모두가 어떻게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궁금해하고 열중한다. 집값이 미친 듯이 치솟고, 주식과 코인이 널뛰기를 하는 동안 누군가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 집과 차가 바뀌고, 누군가는 돈을 다 잃고 절망에 빠진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 돈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설인 가쿠다 미쓰요의 '종이달'이 눈에 띄었다. 서재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우연히 빼들고 작가의 말부터 읽었는데 돈에 관한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고 바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종이달은 1990년대 후반 일본의 거품경제가 꺼져가던 시점을 배경으로, 은행에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취업하게된 전업주부 리카가 1억 ..
신문에서 기사를 봤다. 쇠사슬로 묶여서 생활하는 실험에 도전한 커플이 실험 123일만에 쇠사슬을 끊고 서로 다시는 보지 말자며 결별했다는 기사였다. 이들은 실험을 시작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상대방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지만, 함께 쇠사슬로 묶여 생활하는 4개월동안 원수같은 사이가 되었다. 이들은 결국 쇠사슬을 끊음과 동시에 연인관계와 결혼계획을 완전히 정리하기로 하고, 다시는 얼굴 마주치지 않도록 다른 지역에서 사는걸로 합의까지 했다고 한다.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각자의 프라이버시 없이 쇠사슬로 묶여 모든 일을 함께 해야만 했던 그들의 4개월은 지옥과도 같았을 것이다. 먹고 자는건 그렇다 치더라도 씻는 것, 화장실 가는 것, 일하는 것 그 모든 시간을..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p.8 시작하는 첫 문장 이 소설은 '윌리엄 스토너'라는 인물의 평생에 관한 소설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열아홉이 되던 날까지 농사만 지었던 스토너는 어느 날 아버지의 권유로 농대에 진학하게 된다. 교양수업을 듣다가 뜻밖에 문학이라는 학문에 푹 빠지게 되어 평생을 학자이자 교육자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의 '평생'이 이 소설에 담긴 이야기의 전부인데도 첫 문장부터 그의 모든 인생을..
내가 얼마나 내 안에 갇혀 있는지 알아차릴 때마다 떠오르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문장으로 된 목소리였다. 아무 소리 나지 않아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더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싶었다. 그 마음과 그 얼굴로부터 배우고 싶었다.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맞은편에 앉아보았다. 이것은 그렇게 마주본 네 사람에 관한 책이다. 네 사람이 유심히 바라본 존재들을 향하는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나의 감탄과 부끄러움을 숨길 수 없는 책이다. 스스로에게 갇히는 날이 또 온다면 이 대화들을 다시 떠올릴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마음의 세수를 한다. 이 느낌을 나는 존경이라고 부르고 싶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존경의 순간이 얼마나 희귀한지를 안다. 깨끗한 ..
하루 중 틈틈이 매일 책 2챕터 이상을 읽기로 했다. 일부러라도 정해놓지 않으면 '시간 여유 있을 때 몰아서 읽어야지' 하는 생각 때문에 더 미루게 되니까. 뭘 읽을까 고민하다가 이번엔 를 펴 들었다. 짧은 챕터가 120개로 나눠져있는 책인데 첫 날에 60챕터를 읽어버렸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다양한 이야기와 주옥같은 문장들이 가득 담긴 책이다. 이 책의 작가 '박총'은 엄청난 독서가이자 책 덕후이다. 그의 책사랑이 가득 느껴져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과거 책 사모으고 읽기에 골몰해본 경험이 있는 왕년의 책 덕후로서 다시 나의 독서 열정을 불사르는 좋은 책이었다. 책을 도구화하면 언젠가 당신도 도구로 취급될 날이 온다. 그것이 책의 저주요, 반격이다. 반면 책에게 아무것도 구하..
얼마 전에 했던 드라마 '런 온(Run on)'에서 여주인공 신세경의 직업으로 '영상 번역가'라는 직업이 나왔다.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영화들을 먼저 보면서 영어를 한글로 번역하거나, 한글을 영어로 번역하는 사람들. 극 중 신세경은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영상 번역 프리랜서로서 집에서 밤낮이 바뀐 채 자기 일에 몰두하며 산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서 그 일로 돈까지 버는 사람들은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가. 극 중 신세경이 너무 예쁜데 영어를 잘하는 걸로 나와서 단순 연기겠거니 생각했는데 그 후, 신세경이 실제로도 영어를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 먹었다. 순수 국내파로 혼자 공부해서 외국인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화르르 영어공부에 대한 욕심이 타올라서 그때부터 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