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말들 :: 책덕후의 찬란한 독서 예찬
- 글쓰기 공방/독서 리뷰
- 2021. 5. 18.
하루 중 틈틈이 매일 책 2챕터 이상을 읽기로 했다. 일부러라도 정해놓지 않으면 '시간 여유 있을 때 몰아서 읽어야지' 하는 생각 때문에 더 미루게 되니까. 뭘 읽을까 고민하다가 이번엔 <읽기의 말들 : 이 땅 위의 모든 읽기에 관하여>를 펴 들었다. 짧은 챕터가 120개로 나눠져있는 책인데 첫 날에 60챕터를 읽어버렸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다양한 이야기와 주옥같은 문장들이 가득 담긴 책이다. 이 책의 작가 '박총'은 엄청난 독서가이자 책 덕후이다. 그의 책사랑이 가득 느껴져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과거 책 사모으고 읽기에 골몰해본 경험이 있는 왕년의 책 덕후로서 다시 나의 독서 열정을 불사르는 좋은 책이었다.
책을 도구화하면 언젠가 당신도 도구로 취급될 날이 온다. 그것이 책의 저주요, 반격이다. 반면 책에게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그 자체로 사랑하면 내가 구하지 않은 성공이나 인품 같은 것까지 덤으로 준다. 여기에 독서의 역설이 있다. 투입한 시간과 비용 대비 남는 장사인지 계산기 두드리는 독서를 해 봐야 시답잖은 것만 거둔다. 한편 읽어서 아무 이득도 남기지 않는 독서야말로 가장 많은 것을 남긴다.
책 읽을 시간이 적은 사람일수록 독서도 가성비를 따지게 되는 것 같다. 어렵게 낸 독서 시간이니 최대한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내용만 뽑아먹고 싶은 것이다. 나도 그런 독서를 해본 적이 있다. 그런식으로 가성비를 따지기 시작하면 명쾌한 답을 주는 책 위주로만 찾게 된다. 내가 따로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는 기분이라 짧은 시간에 고효율의 독서를 한 기분이 든다. 인스턴트 라면처럼 맛있고 중독성 있고 나름의 만족감을 주지만, 그런 독서가 습관이 되면 천천히 씹어 삼켜야 하는 산나물과 같은 '소설이나 문학'은 무가치하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독서를 하면서 진정으로 뇌가 즐거움을 느낄 때는 가성비 따위의 목적 없이 그저 즐거워서 읽을 때이다. 너무 좋아서 아껴읽고 싶고, 책을 읽는 그 시간 자체가 너무 행복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선 책에서 무엇을 얻어내느냐가 아니라 책 읽는 행위 자체가 점점 더 중요해진다. 책을 읽는 평범한 시간 자체가 나를 보듬고 싸매 준다.
쓸모없음에도 책을 읽는 것은 소설가 김영하의 말대로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이 가장 재밌"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말의 농도가 진하다. 자기계발에 소홀하면 도태된다, 뱃살은 자기 관리의 실패다, 중학교 이전에 인생이 결정 난다 등 고농도의 문장이 곳곳에 출렁인다. 내면의 농도가 어지간하게 높지 않으면 내 몸의 수액을 세상에 다 빨릴 태세다.
책 읽기는 내 안의 깃든 언어의 농도를 높이는 작업이다. 내 혈관에 우리 시대의 말보다 짙은 생명의 수액이 시퍼렇게 흐르면 역삼투압 현상이 발생한다. 이내 삶의 방식을 뺏기기는커녕 되레 몸 밖의 오염된 말도 흡수해 기꺼운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 나를 살리는 문장이 이내 몸 곳곳에 기숙하면 자칫 세상에 휘둘리지 않을 강단이 생긴다. 이를 '존재를 의탁하는 책 읽기'라 부름 직하다.
책 읽기로 내면의 농도를 높이면 바깥의 오염된 고농도의 문장들에 흔들리지 않게 된다. 이거 너무 멋진 말 같다. 살다 보면 자꾸 외부의 말들에 나도 모르게 흔들리게 된다. 내 안의 중심이 약하기 때문에 자꾸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다. 독서로 '나를 살리는 문장'을 몸안에 차곡차곡 쌓아가는 행위, 정말 중요한 것 같다.
18세기 재속 사제가 쓴 <침묵의 기술>은 침묵해야 할 이유로 "사람은 침묵 속에 거함으로써 스스로를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침묵을 벗어나는 순간 사람은 자기 밖으로 넘쳐나게 되고 말을 통해 흩어져, 결국에는 자기 자신보다 남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를 든다. 그렇다 입을 여는 순간 반응을 기대하게 되고 타자를 의존하게 된다. 침묵하는 이들이 타자에게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길을 독파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으리라.
말을 끝내주게 잘하는 사람도 부럽지만, 침묵을 잘 지키는 사람도 못지않게 부럽다. 답답한 마음에 주변 사람에게 어설프게 털어놓아봤자 그 털어놓은 사실 때문에 또 다른 고민이 생기기도 한다. 자기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침묵과 오랜 생각으로 스스로 타파해나가는 힘, 그걸 기르고 싶다. 침묵할 줄 아는 묵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서머싯 몸의 <과자와 맥주>라는 작품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나온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마른걸레짜듯 쥐어짜는 시대, 사람들을 담즙질의 끌탕에 내모는 사회에서 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인가.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진짜 능력이 아닐까. 이런 능력을 가진 이들이야말로 덜 벌고 덜 성공적으로 살면서 획득한 시간을 독서로 치환해낸다. 그 독서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에게 삶이 온전한 선물로서 베풀어지는 멈춤의 순간이 있음을 오롯이 경험하는 책 읽기, 주위와 뭇 생명이 안녕한지 돌아보는 책 읽기가 아닐까.
바쁘게 돌아가는 요즘 세상에서 정말 아무것도 안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인 것 같다. 잠시라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불안함과 답답함이 몰려와 기어이 핸드폰을 켜고 이 앱 저 앱을 열어보고, 영어 소리라도 듣겠다며 팟캐스트를 켠다. 한 번씩 집에 인터넷이 나갈 때가 있는데 이상하게 우리 집 주변만 통신 음영지역이라 인터넷이 나가면 LTE도 안되고, 전화도 안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 인터넷 선 하나 때문에 순간적으로 정말 고립된 섬이 되는 셈이다. 잠깐 동안 짜증이 나지만 하루정도 그렇게 지내다 보면 약간의 자유를 느끼기도 한다. 나를 옭아매는 줄이 뚝 끊어진 느낌, 그럼 자연스레 책을 펴게 된다.
주체적 삶이란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공부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시간은 격한 외로움을 담보해야 한다. 외롭다고 '관계'로 도피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모든 문제는 외로움을 피해 생겨난 어설픈 인간관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외로움을 감내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이다.
외롭다고 관계로 도피하면 더 큰 외로움을 불러올 수 있다. 오히려 그 외로움과 고독을 자양분 삼아 독서를 하면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무슨 이유에선지 심한 우울증이 찾아왔었다. 아무것도 하기싫고, 세상에 나 혼자뿐인 기분이었는데 그걸 어떻게 빠져나왔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책'이었던 것 같다. 책이 좋았고, 책을 읽는 '나'를 조금씩 좋아하게 됐다. 오히려 쓸데없는 인간관계를 끊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자 훨씬 풍요로운 삶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스스로를 끌어안는 온전한 시간을 가진다는 건 정말 중요하다.
책은 눈으로 읽음과 손으로 읽음이 확실히 다르다. 정민은 "손으로 또박또박 베껴쓰면 또박또박 내 것이 되지만 눈으로 대충대충 스쳐보는 것은 말달리며 하는 꽃구경일 뿐"이라고 절하한다. 발터 벤야민은 필사 없는 독서를 도시 위를 비행기 타고 지나가는 것에 비유하면서 "책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것은 그 책을 필사하는 것"밖에 다른 수가 없다고 했다. 심지어 마오쩌둥은 아예 "붓을 움직이지 않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옮겨 적는 만큼 내 문장이 됨을 나 역시 경험으로 터득했다. 지인들이 어떻게 읽은 걸 다 기억하느냐고 묻곤 하는데 순전히 베껴 쓴 덕분이다.
정민은 "키보드를 누르는 손가락 마디마디에 이 기억이 저장된다"고 하며 필사만 아니라 타자의 효과도 인정한다. 간직하고 싶은 문장을 타이핑해서 모아 두시라. 뛰어난 통찰이나 표현을 담은 문장, 나중에 기억해뒀다 인용하고 싶은 문자, 새로운 어휘의 용례로 기억해 두고 싶은 문장 등 어떤 것이라도 좋다. 그렇게 모인 구절을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로 파일이나 폴더를 여러 개 만들어서 모아 두고 거기에 자기의 생각도 첨언해 보라. 그런 과정에서 사고가 종합적으로 발달한다.
<읽기의 말들> 이 책에 왜 이렇게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은가 봤더니 이 책의 저자도 정말 많은 문장을 필사로 수집해두었나보다. 필사의 효과야 말해 무얼 할까. 영어든 국어든 좋은 문장은 따라 써 보는 게 제일인 것 같다. 눈으로 봤을 때 아리송한 문장도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써 보는 순간 의미가 되어 꽂힌다. 좋은 문장을 필사하는 것까진 좋은데 어떤 체계로 수집해서 정리해야 좋을지 고민해봐야겠다.
볕 드는 창 아래 놓인 정갈한 책상. 그 위에 놓인 한권의 책. 무엇이 더 필요할까. 그 사람은 모든 것을 가졌다.
정원과 서재가 있다면 당신은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졌다.
가족들이 집을 나가고 혼자 남아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곁에선 고양이가 오후보다 나른한 하품을 하고, 나는 고양이의 하품보다 게으른 책장을 넘긴다. 몸을 훈훈하게 덥혀 줄 차 한 잔을 곁들이면 긴긴 겨울도 무섭지 않고 무더운 몸을 식혀 줄 시원한 맥주 한 잔이면 에어컨 없는 열대야도 무섭지 않다.
나는 푸르른 정원과 책이 가득한 서재를 가졌고, 볕 드는 창 아래 놓인 정갈한 책상도 가졌고, 옆에서 나른한 하품을 하는 고양이도 가졌다. 적당히 게으름 부릴 시간을 가졌고, 혼자 골몰하고 싶은 외로움도 가졌다.
세상에, 난 다가진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