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는 애도 매번 잘 쓰지는 않았다. 잘 못 쓰는 애도 매번 잘 못 쓰지는 않았다. 다들 잘 썼다 못 썼다를 반복하면서 수업에 나왔다. 꾸준히 출석하는 애는 어김없이 실력이 늘었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중략…) 10대 때 함께 글쓰기 수업에 다녔던 친구가 얼마 전 나에게 말했다. 어느새 너는 숙련된 세탁소 사장님처럼 글을 쓴다고. 혹은 사부작사부작 장사하는 국숫집 사장님처럼 글을 쓴다고. 나에게 그것은 재능이 있다는 말보다 더 황홀한 칭찬이다. 무던한 반복으로 글쓰기의 세계를 일구는 동안에는 코앞에 닥친 이야기를 날마다 다루느라 재능 같은 것은 잊어버리게 된다. 나는 아마 위의 글 때문에 이슬아 작가를 조금 더 많이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예전에 이..
이렇게 짜릿한 이야기 전개라니...! 앤디 위어는 천재가 틀림없다. 그의 첫 작품 ‘마션’은 영화로 봤고, ‘아르테미스’를 책으로 읽었지만 이번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야 말로 최고로 칠 수 있을 것 같다.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벽돌책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동안 그 어느 부분도 지루한 구석이 없었다. 심지어 복잡한 물리, 화학, 생물 용어들이 난무하는 과학 SF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 가장 재밌었다. 여러번의 플롯 포인트에서 생각도 못한 반전으로 이야기가 럭비공처럼 튀는데 짜릿한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었다. 웃기고 짠하고 때론 눈물이 찔끔 나는 포인트도 있다. 이야기가 끝나는 게 아까울 정도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밤마다 자기 전에 누워서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어두운 곳..
혹시 친구랑 약속이 취소됐을 때 아싸! 하고 외친 적 있어요? 친구들이랑 만나서 떠드는 것보다 혼자서 조용히 책 읽거나 넷플릭스 보는 게 더 좋을 때는요? 나 요즘 좀 그런 거 같아요. 계속 집콕하다 보니 집콕이 너무 좋아져 버린 케이스. 남편도 나도 일까지 재택근무로 하다 보니 집 밖에 나갈 일이 점점 사라짐. 근데 이거 이거...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너무나 사랑하는 뼛속까지 INFJ 인프제 여자 작가 데비 텅이 자신의 그런 성향을 모조리 모아 귀여운 카툰으로 구성한 에세이 책을 소개합니다. 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기가 빨리고, 어서 혼자만의 공간에서 차 마시면서 쉴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책이에요. 저는 리디셀렉트에서 읽었습니다. MBTI..
항상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가 넘치는 사람의 뇌는 어떻게 생긴 걸까. 생전 처음 보는 아이디어에서 "엇, 그러네!"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은 생각 자체가 새로운 게 아니라 그렇게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관계성에 놀라게 되는 거 아닐까? 자극을 받아들이는 바로 그 순간부터 창조적 인간과 보통 인간의 차이가 벌어진다. 창조적 인간은 남들이 지나치는 자극을 확 잡아챈다. 위대한 창조는 그렇게 사소하게 시작된다. 김정운 중에서 에디톨로지는 "모든 창조는 편집이다"라는 관점으로 풀어낸 책이다. Editology, 즉 편집학(?)이라고 할 수 있는 용어를 저자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한다. 사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안에서 어떤 관계성을 찾아내고 적절하게 융합..
"내게는 지난 이 년이 성인이 된 이후 보낸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의 절반 동안은 글을 쓰지 못했고 나머지 시간 동안 을 썼다. 그 시기의 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가 툭 치면 쏟아져 내릴 물주머니 같은 것이었는데, 이 소설을 쓰는 일은 그런 내가 다시 내 몸을 얻고, 내 마음을 얻어 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을 읽기 전에 보게 된 작가의 말 때문이었는지,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의 화자인 '이지연'의 얼굴로 최은영 작가 얼굴이 떠올랐다. 어느 책 낭독회에서 만났던 최은영 작가는 둥글고 선한 얼굴 뒤에 슬픈 그림자가 숨어있는 얼굴 같았다. 그 뒤에 어떤 상처와 슬픔이 있는 걸까 궁금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그 마음 한 켠을 조금 엿본 것 같은 느낌도 든..
독서의 진정한 완성은 서평을 쓰는 것이다. 책을 좋아해서 적지 않은 책을 습관적으로 읽고 있지만 서평을 안 쓰고 넘어가는 책은 머지않아 기억에서 잊힌다. 머릿속에서 한번 더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그만큼 빨리 휘발되어 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읽고 서평까지 쓴 책도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보면 내가 쓴 글이 아닌 듯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지금껏 많은 서평을 써왔는데 정작 서평은 왜, 어떻게 써야하는지 정확한 의미를 몰랐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유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읽으면서 기억해두고 싶은 내용을 표시해뒀다가 요목조목 정리해본다. 서평이란 무엇인가? 서평, 즉 북리뷰book review에서 '리뷰'는 책을 '다시 re 보는 view'겁니다. 새롭게 읽는 것이지요. 이는 해석의 주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