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로 영어공부 :: 무자막 영상시청이 꼭 필요한 이유
- 영어공부 하는법/영어공부 노하우
- 2021. 10. 14.
미드로 영어 공부할 때 가장 어려운 점 중에 하나가 등장인물의 말이 빨라 알아듣지 못하는 발음이 생긴다는 건데요. 영어 초보분 일수록 아무리 쉬운 문장도 단어 위주로 띄엄띄엄 들리거나 혹은 문장 전체가 '블라블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평소 영어를 어느 정도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라도 아마 자막을 켜고 미드를 보다가 잠시라도 자막을 끄게 된다면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실 수도 있어요. "자막을 끄면 전혀 못 알아듣겠는데 이게 영어공부가 되겠어?" 하는 생각이 먼저 드실 거예요. 근데 저는 무자막으로 영어 소리를 접하는 과정이 영어를 언어로서 받아들이기 위한 가장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 전문가의 의견이 아닌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참고만 해주세요.
무자막 영상시청은 영어 소리를 흘려보내기 위한 연습이다.
미드를 무자막으로 봐야 하는 이유는 소리를 잡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자막이 있으면 그 자막에 붙들려 소리를 하나하나 잡으려고 하게 되는데 그런 습관으로 미드를 보면 자막이 있을 때는 다 들리는 것 같은데 자막을 끄는 순간 다 놓치는 느낌이 들게 되죠. 소리를 하나하나 잡으려는 습관 때문입니다. 무자막 영상 시청은 소리를 소리 자체로 물소리처럼 듣기 위함입니다. 단어나 문장을 하나하나 듣고 알아듣기 위함이 아니라 전체적인 언어의 흐름을 느끼기 위한 목적이죠.
자막 없이 소리와 영상만으로 내용을 파악하려다 보면 처음엔 많이 답답합니다. 모든 문장을 다 알아듣고 싶은 욕망이 크거든요. 하지만 '영어라는 언어는 이렇게 생긴 언어구나', '발음할 때 이런 입모양과 혀 모양을 하는구나', 이런 상황에서 이런 표현을 많이 쓰네' 하는 정도만 파악해도 충분합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영어 소리에 대해 나무보다 숲을 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단어나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보다 전체적인 강세나 말투, 빠르기에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거죠. 어떤 상황일 때 어떤 표현을 많이 쓰는지 습관적으로 먼저 떠올릴 수 있게 되고, 그런 뉘앙스와 표현을 그 느낌 그대로 체득하게 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지금 내가 영어를 듣는 건지 한국어를 듣는건지 헷갈릴 만큼 의미가 바로바로 머리에 꽂히기도 합니다.
영어가 언어일 뿐이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저는 무자막으로 영상을 수백 시간 시청해보면서 비로소 몸과 마음으로 제대로 느끼게 된 것 같아요. 그전까지 내가 해왔던 영어공부는 단지 시험을 위한 과목일 뿐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한국말로 대화할 때 취하는 편안한 태도로 영어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공부로만 영어를 접해온 많은 사람들은 영어 소리를 들을 때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합니다. 한마디도 빠짐없이 알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시험영어에서는 그 방법이 먹힐지 몰라도 실전에서는 그게 어렵기 때문에 아마도 저를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이 원어민과의 영어 대화를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말투와 발음에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그냥 느낌으로 알아듣기도 합니다. 소리가 분명 다 흘러가버렸는데 나는 어떻게 다 알아들었지? 하는 상황도 생기죠. 몸에 힘을 빼고 귀를 영어 소리에 아무 생각 없이 내맡기는 순간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 문장이 '블라블라'로 들렸던 상황에서 조금씩 단어가 들리고, 의미덩어리가 들리고, 문장이 들리고, 세부적인 전치사까지도 점점 들리기 시작하는 거죠. 아니, 원어민들이 원래 이렇게 클리어하게 발음했었나 싶고, 그동안은 왜 안 들렸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미드가 똑같이 잘 들리는 건 아니지만요.
목적에 따라 영어공부 방법을 달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어 듣기, 리스닝에만 집중하고 싶을 때는 무자막
영어공부를 할 때 꼭 무자막으로 봐야 한다, 영어자막으로 봐야 한다 이런 고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방법을 바꿔가면서 하면 되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처음엔 다른 공부 전혀 없이 무자막으로 많은 영상을 보기만 했습니다. 무자막으로 봐도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미드 위주로 골라서 계속 보기만 했죠.
대화 사이사이에 알아듣는 단어나 문장, 배우들의 표정이나 행동으로 드라마 내용을 따라갈 수 있고 스스로 어느 정도의 재미만 느낄 수 있다면 그냥 쭉 보시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영어 소리에 귀가 익숙해져서 점점 '블라블라'가 말이 되어 들리게 됩니다. 많이 노출되면 어느 순간부터 뇌가 영어를 소음이 아니라 언어로 인식하고 점점 패턴화 시키는 것 같아요. 이상하게도 영어 듣기에 많이 노출되고 난 이후엔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도 영어 원서가 훨씬 쉽게 읽히거든요.
영어 표현 공부(리딩) 할 때는 영어자막, 한영 자막 활용
저는 내가 몰랐던 영어 표현을 뽑아서 배우고 싶거나, 대화할 때 쓰이는 문장의 다양한 형태를 관찰하고 싶을 때 한영 자막을 동시에 틀어놓고 공부합니다. 넷플릭스 LLN기능을 이용하면 쉽게 편하게 공부할 수 있거든요. 미드를 보면서 대사와 문장을 하나하나 책 읽듯이 동시에 읽어나가다가, 써보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표현이 나오면 그 장면을 캡처해두고 그 표현을 인터넷에서 찾아봅니다. 쓰임새가 많은 표현은 비슷한 표현까지 찾아보면서 좀 더 깊게 공부하기도 하고요. 제 블로그에 정리해둔 영어 표현들이 그 결과인 것이지요. 너무 많기 때문에 모든 영어 표현을 다 블로그에 기록하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블로그에 꼼꼼히 공부해서 기록해놓은 표현들은 기억이 오래가더라고요.
그러니 영어를 공부하고 싶다면 영어 책부터 사지 마시고, 1년 정도는 영어 소리를 듣는 것에만 온전히 투자해보세요. 미드든 애니든 본인이 보고 싶은 걸 정해서 무조건 무자막으로만 보는 겁니다. 저는 무자막으로 영상 시청을 했던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영어책을 몇 권 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영어 소리가 이런 거구나' 하는 바탕이 없는 상태에서 책으로 하는 영어공부는 그야말로 암기과목일 뿐이니까요.
내가 관찰한,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 경험
영어공부를 하다 보면 영어를 이미 원어민처럼 잘하게 된 사람들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궁금하잖아요. 본인들이 대놓고 자기가 영어를 잘하게 된 비법이라고 말한 건 아니지만 제가 관찰한 바로는 대부분의 영어고수는 일정 시간 이상의 커다란 영어 인풋 시간이 있었더라고요.
야나두의 유명한 영어강사 원예나 선생님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차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무조건 영어 소리를 들었다고 해요. 영어공부 유튜버로 유명하신 런던쌤은 체코인인데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와 한국어를 하시죠. 영국 유학시절 시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영국 라디오를 틀어놓고 생활을 했데요. 그런데 그전까지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는데 그때를 전후로 영어가 엄청 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고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보통 영어 선생님들은 무작정 보고 듣기만 하는 방법을 잘 추천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시간 대비 비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보통 영어를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공부했을 때 실력이 늘었다는 걸 즉각적으로 느끼고 싶어 하니까요. 초보에서 중급까지는 조금만 공부해도 금방 올라갈 수 있는데 굳이 영어를 보고 듣기만 해도 실력이 는다면서 몇 년씩 투자하라고 하기는 힘들겠죠.
그런데 그런 즉각적인 결과를 바라고 세 달 바짝 공부하다 지쳐 나가떨어지는 방법보다는 느리더라도 지속 가능한 방법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꾸준히 미드나 원서를 통해 보고 듣고 읽는 방법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시험을 위한 영어공부가 아니라 영어를 언어로서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 하는 거니까요. 그래서인지 끈기 없는 저도 몇 년째 꾸준히 영어공부를 이어올 수 있었네요.
마치며...
제가 객관적으로 영어를 잘하는 상태가 되려면 아직 갈길이 멀지만, 적어도 예전엔 영어로 자유롭게 소통한다는 게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졌다면 지금은, 음.. 계속 이대로 꾸준히 노력하면 가능하겠다 싶은 자신감이 생겼다는 게 다른 점이라고 할까요. 꼭 지금 당장 시험을 위한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분이 아니라면 오래도록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영어를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요.
저는 그 시작으로 무자막 미드 보기를 추천합니다. 준비할 것은 재밌는 미드와 시간, 약간의 답답함을 참아낼 수 있는 끈기만 있으면 되니까요.
*무자막 영상 시청이 결국엔 영어 인풋일 텐데요. 거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포스팅을 참조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