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김신지 :: 몰랐어 내 삶이 이리 다채로운지♬

모두에게 주어지는 하루라는 시간은 매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흘러간다. 기록하는 자의 하루는 다채롭고, 기록하지 않는 자의 하루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일 뿐이다. 저자 김신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는 기록으로 얻을 수 있는 예쁜 마음들과 또 실용적으로 어떤 것들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를 아주 다채롭게 담은 에세이다. 다양한 기록 예시들을 보기만 해도 막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뿜뿜 생기니 기록과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보면 아주 흥미로운 책이 될 듯하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김신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김신지

 

매일 일기를 쓰는 마음

현재에 서서 '후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을 미래로 부치고 싶어하는 사람일 겁니다. 그는 아는 거예요. 지금이 단 한 번뿐이라는 걸. 같은 순간은 절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그러니 기억하고 싶다면, 이 순간을 적어서 미래로 부쳐두어야 한다는 걸. 

<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김신지

 

예전엔 어떤 일을 겪을 때 이 같은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는 다는걸 그리 뼛속 깊이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언젠가 또 겪겠지, 언젠가 또 여기 오게 되겠지, 하고 넘어갔던 순간들이 많은데 그런 순간들을 자세히 기록해놓지 못한 것이 지나고 나면 많이 아쉬워진다. 열심히 기록하는 사람은 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동시에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금 내가 쓰는 이 기록은 미래로 부치는 편지이기도 하다는 걸 기억하자. 

 

매일 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훗날 돌아볼 기록이 과거를 반성하게 해주어서가 아니라 현재에서 나와 마주 않는 시간을 꾸준히 보내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그 시간은 인생에서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쓸데없이 힘을 빼지 않도록, 반대로 내게 중요한 것들은 지키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최근 들어 아침마다 모닝 페이지를 쓰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들을 일기장에 쓰는 거다. 머릿속을 괴롭히는 생각에 대해 쓰거나 혹은 오늘 하루 계획에 대해 쓰기도 한다. 일기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쓰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펜을 잡아도 쓸 말은 아주 많다.

매일 수많은 생각에 휘둘리고 흔들리다보니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노트에 복잡한 마음들을 다 쏟아두고 시작하는 것은 생각보다 꽤 생산적이다. 복잡한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도 신기하게 문장을 마무리할 때쯤엔 다시 '해보자' 하는 마음이 된다. 생각을 글로 쓰면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생각들을 줄 세워서 앞으로 열 맞춰 걷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신기한 글쓰기의 힘이다. 진짜 글쓰기의 시간은 나와 마주 앉는 시간이다. 

 

강과 대화하다가 타인에게 마음을 잘 열지도, 쓰지도 못하는 일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우린 왜 그런게 잘 안될까?" 
"왜인지 알아? 마음이 가난해서 그래." 
며칠 동안 그 말이 맴돌았다. 그동안 내가 느낀 많은 의문이 그 한마디에 다 설명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가난해서 그렇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넉넉함이 없고, 시간도 마음도 자꾸 아끼게 되는 것은. 몇 백 원 앞에서 망설이다 먹고 싶은 음료를 두고 제일 싼 것을 주문하던 스무 살 적처럼. 그런 사람은 돈을 벌게 된 뒤에도 좀처럼 비싼 음료를 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여태 쓸 줄 모르던 마음을, 쓰지 못하던 마음을 어느 날 갑자기 잘 쓰게 되진 않는 것이다. 

 

저자가 자신의 일기장에 썼던 글이라고 하는데, 이 글을 읽는 순간 명치를 맞은 듯 공감했다. 사람을 대하는게 점점 어렵게 느껴졌던 이유가 사실은 마음이 가난해서였을까. 다른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마음과 돈과 시간을 넉넉하게 쓸 수 있는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울까 싶었는데 그게 가난한 마음 때문이었다면, 이제는 그 가난한 마음을 어떻게 부자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해봐야겠다. 

 

기록은 무슨 쓸모가 있을까? 

"효용성이나 효과보다는 '기록'이라는 결과물 자체가 기록의 가장 큰 쓸모가 아닐까 싶습니다. 
- 이승희 < 기록의 쓸모>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는 항상 무얼 시작하기 전, 허튼 데 낭비할 시간 같은건 없다는 듯 이유와 쓸모를 찾지만, 사실 기록의 쓸모란 기록 그 자체에 있는 걸요. 그러니 시작 전엔 알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기록을 시작한 사람만이, 그리하여 눈앞에 자신만의 기록을 쌓아가는 사람만이 기록의 쓸모는, 또 아름다움은 기록 자체에 있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기록의 가치는 기록 그 자체에 있다. 항상 뭔가를 할 때 그 효용이나 가치를 많이 따지는 편인 나는, 그래서 기록을 잘하지 못했던 걸까? 기록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이 기록을 어디다 쓸건데?' 생각했을 때 사용처가 생각나지 않으면 선뜻 시간 들여서 기록하는 게 내키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당장은 효용을 모르겠지만 지금 내 마음을 흔드는 것을 우선은 기록해두는 것, 그런 기록들이 쌓여가는 것, 그것 자체가 기록의 효용과 쓸모인 것을.  

 

제가 모아둔 농담의 부스러기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기록의 유용함은 두 번 웃게 되는데 있다는 것을요. 농담의 순간에 한 번, 그리고 기록해둔 농담을 들춰보는 순간에 또 한 번. 피아니스트 빅터 보르게의 말- "웃음은 두 사람 사이의 가장 가까운 거리다"- 을 빌리자면, 어쩌면 우리가 가장 가까워졌던 순간들을 기록해두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이건 우리만 아는 농담에 가까워요. 그 맥락을 다 이해하고 웃을 사람, 이런 말이 추억이 되는 사람은 나(혹은 우리) 밖에 없을 테니까요. 

 

주변 사람과 함께 빵 터졌던 농담의 순간을 기록해두는 것, 이것도 기록이 될 수 있구나. 한번 웃고 지나가버린 순간은 사라지지만 기록 속에서 한번 더 웃게 해주는 것. 왠지 따뜻한 느낌이 드는 기록이다. 두 사람만이 아는 농담, 그 빵 터지는 웃음의 순간, 그런 순간들이 쌓여서 관계도 더 돈독해질 것 같다. 나도 도전해보고 싶은 기록! 

소설가 김연수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 좋아서 읽는 이 문장들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기록하는 문장들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거예요.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던 그의 말처럼 아주 아름다워지진 못하더라도, 이 문장들을 조금씩은 닮아가고 싶어서 오늘도 기록합니다. 


좋은 문장은 정말 내 인생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 내가 지금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 되었다면 그건 내가 읽은 좋은 책과 문장들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글감을 수집하는 법 

# 마음포착

누구나 느끼고 있지만 막상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감정이 정확히 글에 녹아들어 가 있을 때, 내 마음 같은 에세이를 만났을 때 우리는 흔히 생각합니다. 내가 썼나? 어쩜 이렇게 내 마음하고 똑같지! 이 말을 뒤집어보면, 글감을 찾기가 조금 더 수월해집니다. 내가 느낀 것을 이 세상 누군가도 반드시 느낀다는 말일 테니까요. 

마음의 수면에 어떤 파동이 이는 순간을 캐치하고, 되도록 솔직하게 기록으로 남겨보세요. 나만의 '느낌 창고' 같은 게 되겠죠. (이 방면의 대가는 마스다 미리입니다. 그 역시 틈틈이 자신의 느낌을 기록해둔다고 해요. 덕분에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마음의 정확한 지점을 가리키는 만화를 그리는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글을 읽다가 그런 미묘한 감정을 잘 포착한 부분을 발견하면 소름이 돋기도 한다. '이런 감정을 나만 느낀 게 아니었구나' 하는 신기한 마음과 그 마음을 잘 포착해준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그런 글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평소 마음의 움직임에 날카로운 레이더를 세우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글일 것이다. 남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감정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마음. 그걸로 좀 더 뾰족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 일상의 디테일 포착하기 

재밌고 공감 가는 글은 디테일이 살아있는 글이다. 쓰인 글을 보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막상 내가 글에서 그 디테일을 발휘하려고 하면 쉽지 않다. 평소에 다양한 곳에서 디테일을 도토리처럼 주워서 기록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옆집 아줌마가 하는 말, 친구의 지나가는 농담과 말투, 엄마의 잔소리, 모든 것에서 디테일을 포착할 줄 알아야 재밌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나도 이 부분이 어렵다. 앞으로는 도토리처럼 잘 모아야지. 

 

# 다른 글에서 소재 줍기

내가 읽고 좋았던 글에서 '소재' 혹은 '의미' 한 줄 뽑아서 내 식대로 새로운 글을 써볼 수 있습니다. 좋은 에세이는 읽고 나면 늘 내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듭니다. 거기에서 착안해, 읽고 좋았던 글에서 '그렇다면 이 글감으로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한 뒤 소재로 적어둡니다. 다른 이의 소재에서 내 소재를 발견하는 방식이죠. 


맞아. 읽고 나면 나도 막 글을 쓰고 싶어지는 글이 있다. 그 소재 안에서 나도 할 말이 많을 때, 나도 나만의 이야기가 생각났을 때 그렇다. 그럴 땐 소재 뺏겼다고 아쉽다며 넘어갈 것이 아니라 정말로 소재를 기록해두었다가 나만의 글을 새로 써보는 것도 방법이다. 같은 소재라도 사람마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을 테니 내가 읽는 책이나 글에서 소재를 찾는다면 그건 정말 무한대의 소재가 펼쳐있는 셈. 재밌는 에세이를 읽으면 나도 같은 주제로 하나의 꼭지를 써보는 연습을 해볼 것. 

 

좋은 콘텐츠를 쓰는 법 

내가 하는 일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연습은 '내 마음이 사로 잡혔던 순간'을 찾는 게 아닐까요. 제목을 보는 순간 꽂혀서 산 책 혹은 클릭한 콘텐츠, 이런 식으로 공간을 꾸미면 매력적이구나 생각했던 전시장이나 카페 등. 내가 좋다고 느낀 것엔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 포인트를 기록해둔다면 다음번에 내 일을 할 때 적용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뭘 좋아할까?' 보다 '나는 뭘 좋아하지?'에 집중하는 방식이겠지요. 기억에 남는 글을 쓰고 싶다면 '사람들이 어떤 글을 좋아해 줄까?' 고민하는 것보다 '나는 어떤 글을 좋아하지? 어떤 글을 읽고 마음이 움직였지?'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 입니다. 


콘텐츠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빠지는 함정,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뭘 좋아할까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 이것에 대해서는 사실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다른 사람이 뭘 좋아할지를 고민해야 그들이 봐줄 테니까.

하지만 진짜 오리지널리티가 살아있는 콘텐츠에는 글쓴이의 진심이 들어가 있는 법이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글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찐으로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으면 그 콘텐츠는 일회용으로 소비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을 사로잡는 글을 쓰는 것, 그것을 목표로 잡고 평소에 부지런히 도토리를 모으듯 다양한 글감과 좋은 문장과 기억들을 기록해 나가야겠다. 

그래서, 저도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기록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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