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사랑》 이슬아 :: 반짝이는 재능과 어마어마한 반복이 만나면?

잘 쓰는 애도 매번 잘 쓰지는 않았다. 잘 못 쓰는 애도 매번 잘 못 쓰지는 않았다. 다들 잘 썼다 못 썼다를 반복하면서 수업에 나왔다. 꾸준히 출석하는 애는 어김없이 실력이 늘었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중략…)

10대 때 함께 글쓰기 수업에 다녔던 친구가 얼마 전 나에게 말했다. 어느새 너는 숙련된 세탁소 사장님처럼 글을 쓴다고. 혹은 사부작사부작 장사하는 국숫집 사장님처럼 글을 쓴다고. 나에게 그것은 재능이 있다는 말보다 더 황홀한 칭찬이다. 무던한 반복으로 글쓰기의 세계를 일구는 동안에는 코앞에 닥친 이야기를 날마다 다루느라 재능 같은 것은 잊어버리게 된다. 

< 재능과 반복 챕터 중에서>

 

나는 아마 위의 글 때문에 이슬아 작가를 조금 더 많이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예전에 이스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직접 읽어주기도 했던 글이다. 어마어마한 반복 앞에서 재능 따위 쭈구리로 만들어버리는 그 근성이 너무 좋았다. 물론 내가 보기에 이슬아 작가는 재능과 반복이 합쳐져서 폭발한 케이스 같지만.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이슬아 작가는 혼자 힘으로 에세이 유료 메일링 구독 서비스를 대차게 성공시켰다. 당시 온갖 매체에서 일간 이슬아에 대해 떠들썩할 때는 오히려 이 작가에 대해 시큰둥한 마음이 더 컸다. 특이해서 반짝하는 스타 같은거라고 생각했었다. 나중에야 일간 이슬아 책을 사서 읽고 나서는 놀라고 말았다. 정말 매일매일 이 정도 퀄리티의 글을 찍어내듯 써서 독자들에게 보냈다고? 내가 생각한 수준보다 훨씬 재밌고 좋은 글들이었다. 아파서 병원에 실려가면서까지 약속을 놓지 않고 글을 썼던 흔적들이 모두 남아있었다. 성실함과 부지런함, 또 숨어있는 내공과 멘탈이 받쳐줘야지만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슬아의 부지런한 사랑

부지런한 사랑은 이슬아가 코로나 시대에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겪었던 일들, 또 본인이 초등학생때 일기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 어떻게 글쓰기를 지속해왔는지 그 과정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집이다. 작가가 예전부터 자주 언급했던 스승 ‘어딘’과 함께 했던 글방 이야기도 함께 있어서 흥미로웠다. 같은 글방 출신 작가들도 모두 최근 활발하게 작가로 활동하고 있어 그 글방의 분위기와 수준이 어땠는지 더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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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타의 대부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슬아 작가의 글쓰기도 초등학생 시절의 일기부터 시작되었다. 3학년 담임이었던 ‘은 선생님’은 아이들의 일기를 읽고 성심성의껏 답변까지 달아주는 선생님이었다. 그러면서도 일기장 밖에서는 그 비밀을 철저하게 지켜주는 분이었다.  재밌는 일기로 그 분을 웃기고 싶고 좋은 답장을 받고 싶어서 그녀는 매일 저녁마다 재미난 일상을 샅샅이 뒤져 열심히 일기를 썼다고 한다. 

 

나도 일기를 아주 열심히 쓰는 어린이였다. 일기로 교내에서 상장도 받을만큼. 그 일기장들은 너덜너덜해진채 아직 우리집 어딘가에 잘 보관되어 있다. 그 시절의 나는 일기장에 단순한 일기 외에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고, 시를 지어서 쓰기도 했다. 어느 날엔 담임 선생님에게 서운한 감정을 일기장에 편지 형식으로 담았더니 선생님이 검사하시며 답장을 써주신 적도 있다. 지금의 나는 글 쓸 때 주저함이 많고 심지어 혼자 보는 일기를 쓸 때도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은데 그때의 나는 참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내가 그 시절 써놓은 어떤 시는 지금 봐도 너무 고차원적이라 정말 내가 지은 게 맞나 의심스럽기도 하다.    

 

솔직한 글이 무조건 좋은 글일까? 

솔직함과 글의 완성도는 상관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솔직하지만 별로인 문장들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 내 일기장에서 쉽게 찾을 법한 문장들이었다. 어떤 솔직함은 끔찍했다. 비린내 나는 솔직함도 있었다. 솔직함을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는 글에 관심이 없어지고 말았다. 솔직한 게 어려워서가 아니라 지루해서였다. 위험하기도 했다. 모두가 서로의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더 지옥 같을 게 분명했다.

(중략…)

“어떻게 그렇게 솔직한 일기를 쓸 수 있나요?” 
나는 먼산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일기가 아닙니다. 제 일기는 아이폰 메모장에 따로 저장되어있고요, 그건 누구에게도 보여줄 마음이 없습니다…..” 

(중략….)

보여줄 수 있는 일기를 쓴 날들이 쌓이면 언젠가는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일기를 쓰게 될 테니까. 보여줄 수 없는 일기를 쓴 날들이 쌓이고 또 쌓이면 다시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완성하게 될 테니까.

<일기 검사 챕터 중에서>

이슬아의 에세이들은 자못 파격적이면서 이렇게까지 투명해도 되나 싶을만큼 솔직한 글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슬아는 자신의 글이 솔직한 일기 같은 글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의 사실과 픽션이 섞여있다는 얘긴데, 그 말은 자신의 글이 솔직하지 못한 글이라는 말이 아니라 주제를 드러내는데 방해되는 솔직함은 과감히 빼고,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는 약간의 양념도 첨가되어있다는 얘기리라. 이슬아의 글이 정말로 솔직한 개인 일기같은 글로 끝났다면 아마 그는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타인이 울고 웃을 자리를 남기는 글쓰기

글쓰기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스스로를 멀리서 보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그 연습을 계속한 사람들은 자신을 지나치게 불쌍히 여기거나 지나치게 어여삐 여기지 않는 채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자기 연민의 늪과 자기애의 늪 중 어느 곳에도 빠지지 않고 이야기를 완성하여 독자와 관객에게 슬픔과 재미를 준다. 혹은 두 가지를 동시에 준다. 자신 말고 타인이 울고 웃을 자리를 남긴다. 그것은 사람들을 이야기로 초대하는 예술이다. 더 잘 초대하기 위해, 더 잘 연결되기 위해 작가들은 자기 이야기를 여러 번 다르게 말해보고 써본다. 먼저 울거나 웃지 않을 수 있게 될 때까지. 

<먼저 울거나 웃지 않고 말하기 중에서>

 

이슬아의 글은 유머러스하고 조금은 파격적이며 가끔은 아슬아슬한 수위를 자랑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정갈하고 담백하다는 느낌을 준다. 내용이 아무리 요절복통이라도 글을 쓰는 이슬아 자신만큼은 웃음기를 빼고 정자세로 앉아서 글을 쓴 느낌이랄까. 아마도 자기 연민이나 자기애에 빠지지 않고 중심을 잘 잡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 때문일 듯하다.

 

어쨌든 이 책을 읽고 나니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이 책 어디에도 ‘글쓰기는 좋은 것이니 너도 써봐.’ 같은 말은 없지만, 그냥 노트북을 열고 아무 말이라도 막 쓰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글쓰기를 하려다 보면 일상 하나하나가 다 의미 있고 소중해지는 법이니까. 

글쓰기 자체에 대해, 또 모든 글의 소재인 일상과 사람에 대한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이 가득 느껴져서 너무 좋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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