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영어공부의 시작] 엄청난 영어 인풋이 필요한 이유(영어 리스닝편)

    영어 인풋이 뭘까? 

    영어 인풋은 영어를 듣고 읽는 걸 뜻합니다. 영어로 된 말과 글을 수없이 보고 듣는 과정을 통해 영어뇌가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거예요. 이 낯선 언어가 뭔지, 어떻게 생긴 애들인지, 어떻게 발음하는 건지 수없이 많은 데이터를 우리 뇌가 인식하게 해 주는 거지요. 오늘은 소리 인풋 위주로 얘기해볼게요.

     

    우리 뇌는 딥러닝 기술을 사용하는 컴퓨터와 비슷하다고 해요. 일반 컴퓨터는 계산식을 미리 입력해둔 다음 자료를 넣어 처리하는 방식이라면, 딥러닝 컴퓨터는 수없이 다양한 사례를 보고 들으면서 그 안에서 일정한 규칙을 찾고 계속 발전해나가는 방식이죠. 제대로 된 시작을 하기 까지 오래 걸릴 수 있지만 일단 발동이 걸리면 미친 듯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는 거죠. (AI가 그래서 무서운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영어라는 언어도 먼저 양적으로 많이 보고 듣는 게 중요해요. 일단은 영어의 체계가 뭔지 알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우리 나라의 경우 영어 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는 아이들에게 영어단어 외우기와 문법 공부부터 시키지요. 그건 영어를 배우는 데 있어 우리 뇌에 역행하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토익 만점을 받아도 말은 못 하는 사례가 생길 수 있는 거죠. 저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어를 그냥 수학이나 과학 같은 과목과 비슷한 관점에서 대했던 것 같아요. 점수를 따기 위해 공부는 했지만 그게 사람이 쓰는 언어라는 생각을 크게 안 해본 거죠. 저는 영어단어도 많이 알고 문법도 꽤 잘했어요.(물론 10년도 넘는 옛날 얘기라 지금 실력과는 별 관계가 없겠네요 ㅋ) 그걸로 나는 내가 영어를 좀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외국인을 만났을 때 말 한마디가 제대로 안 나오더라고요. 영어 리스닝은 원래 못했고 공포증도 있어서 그 쉬운 수능 영어 듣기도 잘 못했고, 토익 LC도 잘 못해서 항상 RC에서 점수를 만회하던 사람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은근히 많더라고요. 수영을 글로 배우는 것처럼 영어를 점수 따기 용으로만 배운 사람. 그래서 영어공부에 이렇게 돈을 많이 쏟는 나라에서 영어를 실용적으로 듣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은 것 같아요. 

     

    영어 인풋을 쌓는다는건 "영어라는 언어가 있는데 이렇게 생긴 아이들이야" 하면서 우리 뇌에 보여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수없이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대화와 사람들의 표정, 상황, 목소리, 발음이 알게 모르게 쌓이는 거예요. 영어 소리가 쏟아져 들어올 때 우리 뇌가 그 소리를 그물이나 체로 받는다고 상상해볼게요.아마 처음에는 우리가 가진 그물의 구멍이 너무 커서 들어오는 소리들이 다 빠져버리고 남는 소리가 별로 없을거에요. 아마 문장 하나를 들으면 주요 단어 정도만 들리거나 그 마저도 안 들릴 수도 있고요. 그런데 소리에 익숙해지고 점점 인풋의 양이 많아질수록 그물의 구멍이 점점 작아져서 체로 받을 수 있는 소리가 많아져요. 점점 주어와 동사가 들리기 시작하고 나중에 가서는 전치사 같은 디테일까지 점점 들리기 시작하는거에요. 뜻과 스펠링을 모르는 단어도 들을 수 있게 돼요. 그렇게 어느 정도 일정량의 인풋이 쌓이면 비로소 영어공부를 제대로 시작할 준비가 된 거라고 생각해요. 

     

     

    영어공부에 엄청난 영어인풋이 필요한 이유

     

    소리 인풋은 어떻게 퍼부을까?

    저같은 경우는 1년 동안 수많은 미드를 무자막으로만 봤어요. 다른 공부는 전혀 안 하고요. 대신 내가 재밌게 볼 수 있는 것들 위주로요. 근데 자막이 없는 상태에서 재밌게 보려면 내용을 따라갈 수 있어야 하겠죠. 디테일한 대화를 하나하나 캐치 못하더라도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는 류의 미드들이었죠. 보통 대사와 행동이 일치하는 류의 프렌즈 같은 생활 미드나 아님 내용이 막장이라서 재밌는 가십걸 같은 류의 미드였어요. 루머의 루머의 루머 (13 reasons why)는 보다가 내가 무슨 언어로 보고 있는지 잠깐 까먹을 만큼 엄청난 몰입을 경험하기도 했고요.

     

    사람들의 평이 좋거나 영어공부에 좋다고 하는 미드도 내가 재미없으면 못 보겠더라고요. 일단 재미를 제일 우선순위에 놓고 봤어요. 1년 동안 시간만 나면 아이패드로 미드만 보고 있었더니 남편이 "영어공부하는 거 맞아? 노는 거 같은데.." 라더군요. 사실 저도 헷갈리긴 했어요. 지금까지 해온 영어공부법에 비해 너무 쉬운 것 같았거든요. 미드도 보다 보니 점점 더 재밌어지고요. 처음엔 무자막으로 미드 보는 게 너무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답답함이 조금씩 사라지더군요. 많이 쓰는 표현들은 점점 익숙해지고,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더 잘 기억하게 되었어요.

     

    사실 저는 원래 미국 문화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외국 배우들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르고, 미드 자체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거든요. (한국 드라마를 더 좋아했죠 ㅋ) 그런데 정말 잠깐 나오는 엑스트라 배우의 얼굴마저도 잘 기억하게 됐어요. 길모어 걸스에서 로리의 한국인 친구로 나왔던 일본 배우가 어른이 되어, 루머의 루머의 루머에서 학교 선생님으로 잠깐 출연한 걸 보고 바로 알아챘어요. 두 드라마 사이에 아마 10년 넘는 텀이 있었고 청소년이 어른이 됐는데 말이죠. 주인공 얼굴조차도 잘 기억 못 했었는데 엄청난 발전이죠.

     

    그 말은 예전엔 미드 볼 때 화면보다는 자막에 더 집중을 해서 봤었다는 의미겠죠. 무자막으로 보고 나서는 사람과 상황 자체에 더 집중을 해서 본거고요.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영어 소리를 100% 온전히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 들어본 첫 경험이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오랜 시간 영어를 공부했는데 그게 첫 경험이라니 웃길 수 있지만 저는 진짜 그런 느낌이었어요. 비로소 영어를 처음으로 제대로 들어본 느낌. 

     

     

    못 알아 들어도 괜찮은 건가? 

    영어를 쌩으로(?) 들을 때 못 알아듣는 부분이 있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희는 한국 드라마 볼 때 한글자막 켜고 봅니다... 요즘 빈센조 재밌어서 즐겨보는데요. 넷플릭스로 보면 자막을 켤 수 있잖아요. 사실 저는 공부 겸 영어자막을 켜서 보고 싶은데 남편이 방금 뭐라 그랬냐며 돌려보자고 할 때가 많아서 짜증 나서 한글자막을 켰지요 ㅋㅋ 

    심지어 우리가 매일 쓰는 한국어도 그럴진대 영어를 온전히 100% 알아듣길 기대하는 건 약간은 무리가 있겠죠. 

     

    하지만 전~혀 못 알아듣고, 심지어 상황도 맥락도 없는 영어를 계속 듣는 건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영어공부에 가장 중요한 인풋은 comprehensible input, 즉 이해 가능한 인풋이라고 하잖아요. 70~80% 정도만 알아들어도 사실 드라마 보는데 크게 지장은 없어요. 대사에 숨겨진 포인트가 많은 수사물, 법정물 같은 건 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스토리에서 사람이 하는 말은 다 거기서 거기거든요. 맥락 안에서 이루어지는 말들을 계속해서 듣는 것이 이해 가능한 인풋입니다. 

     

    무자막으로 봤을 때 내용을 따라갈 수 있는가 없는가로 한번 판단해보시고, 그걸로 가늠이 안된다면 영어자막으로 켜고 보면서 글로 봤을 땐 이해가 되는지를 따져보는 거예요. 글로는 이해가 되는데 들리지가 않는다면 그건 많이 듣다 보면 서서히 들리기 시작할 거예요. 내용 이해도 안 되고 자막도 해석 못하겠다면 그것보다 좀 더 쉬운 미드를 찾아보는 거죠.

    사실 초, 중급 수준에서는 유아 애니나 초등 애니 같은걸 꾸준히 보면서 기초부터 찬찬히 다지면서 인풋을 쌓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데, 문제는 유치해서 재미가 없을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본인이 애니 종류를 좋아한다면 쉬운 애니 위주로 꾸준히 듣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일 수 있습니다. 저는 애니 종류는 가끔씩 밥 먹을 때만 짧은 걸로 하나씩 봐요. 

     

     

    영어 인풋은 뼈대를 만드는 과정이다. 

    프렌즈 같은 시트콤 미드를 보면 사람들 웃음소리가 같이 나와요. 무자막으로 보면 처음에 그 웃음소리가 너무 거슬려서 듣기 싫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는 못 알아들어서 안 웃긴데 다른 사람들만 웃으니까요. 바보 된 느낌이라 별로인데,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나도 같이 웃고 있는 걸 발견해요. 그리고 신기해하죠. 내가 미드를 무자막으로 보면서 유머 코드를 이해하고 웃고 있다니!! 

     

    내가 5살 아기가 됐다 생각하고, 어른들이 하는 말을 엿듣는 거라고 생각해봅시다. 아기들은 뭔 말인지 못 알아들어도 분위기와 상황은 기가 막히게 읽어내잖아요. 아기들이 어른들의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짜증 내지 않듯이 그냥 분위기 정도만 파악하면서 들어보는 겁니다. 어차피 크면 다 알게 될 말들이니까요.

    예를 들어 부모가 "결혼기념일"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아이는 부모가 하는 대화 중에 '결혼기념일'이라는 단어가 뭔지 몰라요. 하지만 들은 대로 따라 말할 수는 있죠.  듣고 말할 수 있으면서 내가 무슨 단어를 모르는지 알고 있어야 "엄마, 결혼기념일이 뭐야?"라고 물어볼 수 있는 거잖아요. 여기서 중요한 건 아이는 결혼기념일의 뜻이 뭔지 모를 뿐이지 대화의 흐름은 캐치하고 있어요. 그리고 자신이 뭘 모르는지 안다는 거예요. 일단은 이런 상태를 만들어야 그 이후로 내가 어떤 부분을 채워나가야 하는지 알게 돼요.들을 수 있으면 거기에 뜻을 입히는 건 엄청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테니까요. "엄마랑 아빠랑 결혼한 날을 말하는 거야."라고 말해주면, 아이는 결혼기념일이 뭔지 알게 되고, 그다음부턴 똑같은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되겠죠.

     

    영어 인풋은 아웃풋을 위한 말의 뼈대, 플랫폼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을 많이 하는지 자연스럽게 관찰하면서 말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보는 거죠. 우리가 한국어 문법을 공부하지 않았는데도 말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것처럼요. 세부적인 단어는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될 수도 있고, 모르더라도 추후 사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면 금방 알게될 테니까요. 미드에서 모르는 단어는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어요.  심지어 처음엔 아는 단어도 안 들릴 거예요. 

    미국 사람에게 '쌍쌍바', '김두한' 같은 단어를 설명하려면 2차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처럼, 배경지식의 차이 때문이죠.  머릿속 뇌는 천천히 가장 중요한 것부터 채워나갈 거예요. 바로 영어의 뼈대요. 그래서 리스닝만 했을 뿐인데도 그 후 리딩이 더 쉽게 느껴지는 건가 싶어요. 

     

    영어 인풋을 부으면  어떻게 되는데? 

    사실 뭐, 저도 아직 차고 넘칠 만큼 인풋을 부은 건 아니라서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앞으로 한참 더 많이 들어야 해요. 하지만 처음보다 영어 리스닝 실력이 월등히 상승했어요.얼마 전 올해 수능 듣기 문제를 풀어 봤는데 이게 원래 이렇게 쉬운 거였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테이프 늘어진 듯 발음하는 느낌이라 아주 느긋하게 풀고 만점이었어요. 그 후 AP뉴스 딕테이션을 해봤는데 헛, 그것도 어느 정도 잘 들리더라고요. 웬만한 미드는 편한 마음으로 무자막으로 내용도 이해하면서 볼 수 있게 됐어요.(물론 아직 제 수준에는 어려워서 못 보는 미드도 많습니다)

     

    ★관련링크 : 무자막 미드 1년 본 후, AP뉴스 받아쓰기를 해봤더니..?

     

    그런데 최근엔 무자막으로만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어 표현 공부도 같이 해요. 영어 원서도 읽고요. 그런데 이게 영어를 1년 동안 꾸준히 많이 들어둔 것 때문에 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공부를 지속할 수 있는 근육 같은 게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미드로 인풋을 들이붓기 전에도 많은 영어공부를 시도해봤죠. 하지만 보통 며칠 바짝 하고 나면 힘이 빠져서 못하겠더라고요. 그렇게 며칠 쉬다 다시 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기분이 들어서 더 지속하기 힘들죠. 그런데 일단 영어 리스닝 근육이 붙고 나니까 다른 공부가 훨씬 수월해졌어요.

     

    ★관련링크 : 매일 영어공부 1시간 습관 기르는 방법

     

    우선 리딩을 대하는 내 태도가 달라졌죠. 영어 리딩은 독해 지문으로서만 대하던 제가 이제는 자기 전에 매일 영어 원서 소설을 읽어요. 억지로가 아니라 재밌어서요. 

    요즘 읽고 있는 영어 원서는 <The seven husbands of Evelyn Hugo>라는 소설인데 내용이 꽤 흥미로워요. 이건 다음 기회에 소개할게요. 

     

    영어를 외워서 쓰는 원서 필사도 매일 하고 있는데 이제 다음 주면 2달째네요. 하루도 안 빼먹고요. 이게 제가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예전만큼 영어 공부하는 게 힘들지 않기 때문인 것 같거든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생각도 안 들고요.이제야 뭔가가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련링크 :  영어 원서 필사 매일 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40일 차 후기)

     

     

    얘기가 너무 길어졌는데, 어쨌든 영어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제일 먼저 인풋부터 쌓으세요. 수많은 영어 말들이 내 뇌를 스쳐가도록 가만히 놔두세요. 얼마나 쉬운 방법입니까. 쉬우니까 저는 1년 넘게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바닥을 다지면서 올라가는 게 진짜 상승이잖아요.(어디선가 주식 스멜 나는 문장 ㅋㅋ)

     

    관련링크 : 미드로 영어공부 똑똑하게 하는 3가지 방법

     

     

    부디 행운을 빌어요. 지겹게 보자고! 아푸 아푸     

     

     

    저도 현재 진행형이라 영어를 아직 잘하는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처음에 비해 성장한 부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영어 공부하면서 개인적으로 든 생각과 경험, 영어공부 방법에 대해 여기저기서 보고들은 얘기를 종합해서 쓴 글입니다.
    정답은 아닐 수 있지만, 영어공부를 시작하려는 시점의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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