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유혹하는 글쓰기》나도 소설 쓰고 싶게 만드는 책

소설을 쓴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지금까지 한 번도 상상력에 기반한 이야기를 지어내서 써본 적이 없어 나에게는 약간 판타지 같은 세계다. 그런 글쓰기를 신명 나고 즐겁게 현재까지 계속해오고 있는 작가 스티븐 킹이 쓴 소설창작론,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어봤다. 독자를 유혹하는 글쓰기 방법에 대한 책인지, 소설을 써보라고 유혹하는 글쓰기 인지 모를 만큼 일단 다 읽고 나니 나도 소설을 한 번쯤은 꼭 써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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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는 미국에서 출간된 지 20년 정도 된 책이다. 이 책에는 스티븐 킹의 어린 시절과 무명시절 이야기부터 작가가 생각하는 소설 창작법과 좋은 문장 쓰는 법, 그리고 실제 작가들의 생활상까지 엿볼 수 있는 재밌는 거리들이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스티븐 킹이 소설을 쓰는 방식이었다. 그에게 소설은 또 하나의 세상인 것 같았다. 상황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저절로 이야기가 되어 굴러가는 흥미로운 세상, 그리고 작가는 그걸 관찰하면서 받아쓰기만 하면 소설이 된다고 그는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니, 얼마나 유혹적인가. 

 

스티븐 킹이 말하는 소설 창작이란?

소설 창작이란 어떤 이야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신념이다. 작가가 할 일은 그 이야기가 성장해갈 장소를 만들어주는 (그리고 물론 그것을 받아 적는) 것뿐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최소한 노력이라도 해준다면) 우리는 함께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미쳤다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니까. 

<뉴요커>와의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소설이란 땅 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라고 믿는다는 말을 했을 때 기자(마크 싱어였다)는 내 말을 못 믿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안 믿어도 좋다, 다만 '내가' 그렇게 믿는다는 것만 믿어주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 말은 사실이다. 소설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세계의 유물이다.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자기 연장통 속의 연장들을 사용하여 각각의 유물을 최대한 온전하게 발굴하는 것이다. 

소설이란 온전히 작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스티븐킹은 이미 땅속에 화석처럼 존재하는 이야기를 발굴하는 거라고 하고, 심지어 상황만 던져주면 저절로 작가도 예상 못했던 결말이 짜잔 나타난다고까지 말한다. 최초의 독자로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하는 사람이 작가라는 것이다. 

상황이 제일 먼저 나온다. 등장 인물은 그다음이다. 마음속에서 그런 것들이 정해지면 비로소 서술하기 시작한다. 종종 결말이 어렴풋이 보일 때도 있지만 등장인물들에게 내 방식대로 움직이라고 요구한 적은 없었다. 나는 오히려 그들이 '자기 방식대로' 움직이기를 바란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뜻밖의 결과가 나온다. 서스펜스 소설가에게 이것은 대단히 멋진 일이다. 그럴 때 나는 소설의 창조자일 뿐 아니라 최초의 독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가인 나조차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미리 알면서도 그 소설의 결말을 정확히 짐작할 수 없다면 독자들도 안절부절못하면서 정신없이 책장을 넘길 거라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왜 결말에 대해 걱정해야 하는가? 왜 그렇게 독재를 하려고 안달인가? 빠르든 늦든 모든 이야기는 결국 어딘가에서 끝나기 마련인데. 

 

소설 창작을 잘하기 위한 방법론 중에서

묘사를 잘하는 비결은 명료한 관찰력과 명료한 글쓰기인데, 여기서 명료한 글쓰기란 신선한 이미지와 쉬운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의 이같은 실패는 좋은 대화문을 쓰는 솜씨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나의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는 듯하다. 좋은 대화문을 쓰는 작가들은 흔히 대화를 잘 듣는 귀를 타고난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일부 연주자나 가수들이 완벽하거나 완벽에 가까운 음감을 타고난 것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대화에 대하여 이야기한 내용은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을 창조하는 데도 똑같이 적용된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눈여겨보는 일, 그리고 본 것에 대하여 진실을 말하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를테면 '그날 애니는 마음이 울적해서 자살이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라든지 '그날 애니는 유난히 즐거워 보였다'처럼) 직접적인 표현은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말을 굳이 해야 한다면 나는 이미 실패한 것이다.  지저분한 머리를 하고 혼자 묵묵히 앉아 마치 강박감에 사로잡힌 듯 케이크와 사탕을 정신없이 집어먹는 여자를 여러분에게 보여주는 것, 그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애니가 조울증 때문에 울적해진 상태라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것, 그것이 성공적인 작품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잠시나마 애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만들 수 있다면 - 그녀의 광기를 이해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 나는 여러분이 공감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일체감마저 느낄 수 있는 등장인물을 창조한 것이다. 
처음부터 문제나 주제 의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것은 형편없는 소설의 지름길이다. 좋은 소설은 반드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주제로 나아간다. 주제에서 출발하여 스토리로 나아가는 일은 좀처럼 없다. 이 규칙에 딱 하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같은 우화 소설 뿐이다. 

글을 쓸때 마음속에 새겨두어야 할 주옥같은 꿀팁들이 정말 많은 챕터였다. 나는 그동안 어떻게 글을 써왔던가 돌아보게 만들고, 앞으로는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생각하게 만들어줘서 좋았다.  

 

글쓰기가 주는 쾌감

 내가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나 자신이 원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써서 주택 융자금도 갚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나는 쾌감때문에 썼다. 글쓰기의 순수한 즐거움 때문에 썼다. 어떤 일이든 즐거워서 한다면 언제까지나 지칠 줄 모르고 할 수 있다. 
글쓰기의 목적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데이트 상대를 구하거나 잠자리 파트너를 만나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 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이 책의 일부분은 (어쩌면 너무 많은 부분이) 내가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 내용이다. 나머지는 (이 부분이 가장 쓸모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허가증이랄까.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여러분도 해야 한다는, 그리고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여러분도 해내게 될 것이라는 나의 장담이다. 글쓰기는 마술과 같다. 창조적인 예술이 모두 그렇듯이, 생명수와도 같다. 이 물은 공짜다. 그러니 마음껏 마셔도 좋다. 

글쓰기는 쓰기 시작하기 전에는 하얀 백지장같은 막막함을, 막상 다 쓰고 나면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는 조금 이상한 활동이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는 프로들도 글을 처음 시작할 때는 언제나 막막하다고 한다. 하지만 글 한 편을 다 쓰고 '끝'이라고 쓰는 순간마다 느끼는 쾌감이 있다. 그게 꼭 소설과 같은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글 한편을 어찌 됐든 완성시켰다는 뿌듯함과 내 눈앞의 결과물 때문이다.

나도 글쓰기가 좋다. 천부적인 재능은 없지만 어쨌거나 글 한편을 정성들여 완성시켰을 때의 쾌감을 안다. 그런데 스티븐 킹이 말하는 소설 쓰기의 즐거움은 아직 느껴본 적이 없어서 꼭 경험해보고 싶다. 아무래도 스티븐 킹의 유혹에 넘어간 것 같다. 

 



책 끝부분에는 스티븐 킹이 <유혹하는 글쓰기> 집필중에 생사를 넘나드는 큰 교통사고를 당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는 무릎 밑으로 다리뼈가 9개로 조각나버렸고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 할 정도로 심각했던 자신의 상황마저도 흥미로운 소설처럼 쓰고있다. 담담하다 못해 조금은 유머러스해 보이기까지 했다. 책 집필을 마무리하는 시기까지도 치료가 진행중이고 고통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인 듯 보였는데 역시나 그를 고통에서 구해준 건 글쓰기인 듯 보였다. 이 정도면 온몸으로 그가 얼마나 글쓰기를 사랑하는지 보여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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