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 커플]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사람 사이
- 글쓰기 공방/에세이
- 2021. 6. 20.
신문에서 기사를 봤다. 쇠사슬로 묶여서 생활하는 실험에 도전한 커플이 실험 123일만에 쇠사슬을 끊고 서로 다시는 보지 말자며 결별했다는 기사였다. 이들은 실험을 시작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상대방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지만, 함께 쇠사슬로 묶여 생활하는 4개월동안 원수같은 사이가 되었다.
이들은 결국 쇠사슬을 끊음과 동시에 연인관계와 결혼계획을 완전히 정리하기로 하고, 다시는 얼굴 마주치지 않도록 다른 지역에서 사는걸로 합의까지 했다고 한다.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각자의 프라이버시 없이 쇠사슬로 묶여 모든 일을 함께 해야만 했던 그들의 4개월은 지옥과도 같았을 것이다. 먹고 자는건 그렇다 치더라도 씻는 것, 화장실 가는 것, 일하는 것 그 모든 시간을 상대와 함께 해야하는 건 과연 어떤 기분일까. 그렇게 보내는 시간 속에서 아마 그들은 서로를 조금씩 증오하게 되었으리라.
칼럼을 읽다가 마침 '적당한 거리'에 관한 좋은 문구들을 발견해서 발췌해 보았다.
수관 기피
깊은 산속에서 하늘을 향해 사진을 찍으면 기묘한 경계로 이루어진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찍힌다. 흥미로운 건 숲속의 소나무, 녹나무 같은 나무들이 자라면서 꼭대기 부분이 상대에게 닿지 않는 현상인데 이를 수관 기피라고 한다. 수령이 비슷한 나무들은 자라날 때 옆 나무의 영역으로 침범하지 않는다. 이른바 나무들 사이의 거리 두기 인 셈이다. 식물학자들은 수관기피를 공간을 겹치지 않게 확보해, 뿌리 끝까지 햇빛을 받아 동반 성장하기 위한 식물들의 생존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림태주의 '관계의 물리학'
좋아하는 사이는 거리가 적당해서 서로를 볼 수 있지만, 싫어하는 사이는 거리가 없어져서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사이가 있어야 모든 사랑이 성립하고 사이를 잃으면 사랑은 사라진다. 사랑은 사이를 두고 감정을 소유하는 것이지 존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어, "코모레비"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이라는 뜻의 단어
백영옥의 말과글 칼럼 <'사이'에 대하여> 에서 부분 발췌
가장 아름다운 사이는 바로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둘 줄 아는 사이가 아닐까.
남편에게 쇠사슬 커플 얘기를 해줬더니, 너무 바보같은 실험이라고 얘기했다. 누구라도 그렇게 붙어있으면 견뎌낼 수 없을 것이라며. 맞는 얘기다. 서로간에 거리가 없으면 그 어떤 사랑하는 사이도 서로를 견뎌낼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사이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사이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아래로 바람이 지나가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서로 얼굴을 보며 미소 짓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