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지옥> 주관적 해석 :: 무작위적 불행에 의미 부여를 해야할까?
- 덕밍아웃/영화와 드라마
- 2021. 12. 2.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의 뒤를 이어 세계 1위를 찍고 있는 드라마 지옥은 독특하고도 뜬금없는 세계관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종교와 믿음에 관한 디스토피아 이야기인 것 같아 흥미가 가던 작품이라 넷플릭스에 공개된 후 빠르게 각 잡고 정주행 했다.
넷플릭스 지옥 줄거리
어느 날 갑자기 공중에 커다란 지옥의 사신 얼굴이 나타나 내가 죽을 날짜와 시간을 고지한다. 예정된 그 순간이 오면 쿵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근육질 괴물 형상을 한 지옥의 사자들이 나타나 고지받은 사람을 갈기갈기 찢고 새까만 잿더미로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현상이 방송국 카메라가 전국으로 생중계하는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자 사람들의 공포심은 극에 달한다.
"분노한 신이 이제 직접 인간을 벌하기 시작했구나!"
그렇게 살아있는 자들의 지옥이 시작되었다.
넷플릭스 지옥 후기 및 소감
다 보고 난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면 좋았던 부분보다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주요 등장인물인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등의 연기는 훌륭했으나 스토리를 받쳐주는 조연 몇몇들의 연기력이 고르지 않아서 중간중간 어색한 연기톤을 보고 있기 힘들었고, 스토리 흐름이 종잡을 수 없이 이어져 전반부와 후반부가 전혀 다른 드라마인 것처럼 흘러가는 것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스토리 상으로 보면 반전에 반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 보고 난 후 '잘 봤다'란 느낌보다는 '조금 유치한데?'라는 생각이 좀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고 나서 며칠이 지난 뒤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혹시 이런 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름대로의 주관적 해석을 몇 자 적어보려 한다.
Spoiler Alert!!
해석 중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지옥을 보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해주세요!
넷플릭스 <지옥>에 대한 주관적 해석과 생각
지옥의 사자는 정말로 신의 의도인가?
드라마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신의 의도를 수행하는 지옥사자들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흔히 상상했던 신의 모습과는 달리 그들은 괴물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죽음이 고지된 시간에 맞춰 나타나 당사자를 철저히 찢고 태워버린 뒤 사라지지만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그들의 진짜 실체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들은 물리적으로 죄인에게 고통을 주고 벌하지만 행동에 대한 이유는 전혀 밝히지 않는다. 그러한 이유로 고지를 받고 죽게 되는 사람들은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사회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히고 남은 유가족까지 죄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고통받는 사회가 된다.
이러한 현상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새 진리회'라는 사이비 종교가 득세하여 사회를 장악하려 든다. 모든 것이 신의 뜻이며 고지를 받는 자는 모두 죄인이라는 공포를 이용하지만 실은 자기들도 이 현상의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그저 사람들이 잘 믿을 수 있는 가짜 논리를 지어내기 바쁘고, 고지를 받고 죽는 자들의 시연을 중계하여 공포를 이용하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이 알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드라마 지옥 대사에서도 몇 번 언급되듯이 이 현상은 신의 의도라기보다는 무작위적인 재앙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선인과 악인을 가려내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동등한 확률의 뽑기와 같은 것이다. 고지를 받은 사람은 단지 재수가 없었을 뿐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무작위 한 선택 속에서 어떤 법칙을 발견하고 싶은 인간은 거기에 죄인과 단죄 프레임을 씌워 종교를 만들고 사회를 공포에 빠뜨린다. 신의 의도라는 프레임을 단숨에 벗길 수 있는 사건은 태어난 지 한 달 된 신생아에게 고지가 내려지면서부터다. 심지어 부모의 희생으로 그 아기는 지옥사자들로부터 살아남았다.
신도 가끔은 실수를 하는 걸까, 아니면 인간이 신을 이긴 걸까? 결론은 그냥 둘 다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냥 우연에 불과했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떤 초현실적인 사건이 일어났고, 그 일을 당한 사람은 불쌍한 피해자일 뿐이다. 괴물의 형상을 조금만 다르게 바꿔본다면, 그건 갑자기 일어난 지진이나 홍수일 수도 있고, 교통사고일 수도 있으며, 갑작스러운 말기 암 선고일 수도 있다.
불행은 의도를 가지고 일어나지 않는다.
자연재해가 사람을 봐가면서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여기까지 쓰고 나니 어디선가 책에서 본 문구가 생각나서 한번 옮겨본다.
천재고 인재고 재난이 있어서는 안 되는 까닭 중의 으뜸은 재난은 결코 악인과 선인을 골라서 덮치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 완벽한 공평, 아니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석할 길 없는 철저한 불공평 때문에 재난이 무서운 것이다.
<박완서>
결국 여기서 말하는 지옥은 죄인이 지옥사자에게 끌려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 이곳이 아닌가 싶어 진다. 언제 어디서 고지를 받을지 모르는 사람들은 항상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살아가야 한다. 고지를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지를 받고 20년 동안이나 공포에 떨며 살아온 정진수 교주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은 걸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이 한없이 수치스럽고 괴로울 것이다. 고지를 받은 자의 유가족은 가족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보면서 괴로움에 떨고, 그 이후엔 죄인의 가족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함께 지탄과 비난을 받게 된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고통과 불안에 허덕이는 세상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일까.
<지옥>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거였을까?
초점은 신의 의도가 아니라, 그 현상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믿어버리는 인간과 그런 인간의 믿음을 이용해 먹는 또 다른 인간 집단, 사이비 종교라는 점이다. 사람은 눈으로 본 것을 더 잘 믿게 된다. 그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느 날 인간에게 불어닥친 재앙'에 '괴물의 형상'을 부여하여 이야기를 만든 것이 아닐까.
넷플릭스 지옥 결말은 고지를 받고 죽은 박정자의 부활로 끝을 맺는다. 부활이라니, 정말 <지옥>은 전체 스토리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았다. 시즌2 이야기 진행을 위해 열린 결말로 마무리를 지은 것 같은데, 시즌2에서는 그 초현실적인 괴물들의 정체가 밝혀질는지. 제발 개연성 있는 전개로 아름답게 스토리가 마무리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