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부신 친구> 엘레나 페란테 나폴리 4부작 :: 우정의 복잡미묘한 맛

책을 사놓고 책꽂이에 꽂아놓은지 무려 5년 만에 <나의 눈부신 친구>를 완독 했다. 그동안 앞부분을 조금 읽다 관두기를 몇 번, 이번엔 드디어 초반의 허들을 넘고 내용 속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동안 왜 섣불리 덤비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니 너무나 큰 이야기의 스케일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작가 엘레나 페란테가 무려 2,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긴 호흡으로 두 친구의 평생에 걸친 진한 우정에 대해 얘기하는 나폴리 4부작의 첫 번째 책이다.

이탈리아 출신 작가라고만 알려져 있는 엘레나 페란테는 필명 외에는 그 무엇도 알려진 게 없는 베일에 싸인 작가다. 작가는 작품으로만 이야기하면 될 뿐 부수적인 이야기는 전혀 필요 없다고 말하며 스스로 모든 정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인터뷰도 꼭 필요한 경우에만 서면으로 응한다고 한다. 이 얼굴 없는 이탈리아 작가는 실제로 철저히 작품만으로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담겼길래 그토록 사람들이 열광하는걸까 싶었는데, 읽어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낯선 배경에서 벌어지는 낯선 이들의 삶을 말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섬세하고 절묘하게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집어낸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두 소녀의 아름답고 빛나는 우정을 그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 조심스럽게 자리하는 질투, 우월감, 열등감 또한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엘레나 페란테 나의 눈부신 친구
엘레나 페란테, 나의 눈부신 친구

 

나의 눈부신 친구 줄거리 

소설은 어른이 된 레누가 친구 릴라의 아들에게서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그는 엄마인 릴라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전한다. 릴라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어느 날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졌다. 감쪽같이. 

그리고 레누와 릴라 두 친구의 어린시절부터 차례대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레누와 릴라는 나폴리의 빈민가 마을에서 함께 자라났다. 매일같이 마을 사람들의 욕설과 고성이 오가는 지저분하고 가난한 마을의 학교에서 만나 친구가 된 레누와 릴라는 서로의 빛나는 모습을 발견하고 친구가 된다.


소설의 화자인 레누는 릴라의 똑똑하고 직관적이면서 용감하고 저돌적인 면을 좋아하고 따르면서도 두려워하고 때로는 미워한다. 레누의 모든 세계는 릴라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레누는 릴라가 너무 좋으면서도 거기에 대비되는 자신의 부족한 면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좀 더 성숙하고 예쁜 본인의 모습에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둘은 커가면서 점점 삶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레누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계속 공부를 하게 된 반면, 릴라는 집안 사정상 공부를 그만두고 부모님이 운영하는 구둣방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는 레누보다 혼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며 공부하는 릴라가 여전히 훨씬 뛰어나다. 평범하지만 노력파 레누와 뛰어난 두뇌와 직관을 가졌지만 점점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는 릴라의 우정을 지켜보다 보면 저절로 나 또한 내 오랜 친구를 떠올리게 된다. 

 

 

복잡 미묘한 우정이라는 감정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다 보니 얼마 전 봤던 넷플릭스 미드 <파이어 플라이 레인>도 생각났다. 똑같이 두 소녀의 평생에 걸친 우정을 얘기하고 있다. 우정이라는 감정은 참 아름다우면서도 복잡 미묘하다. 순수하게 아끼고 애정 하는 감정이면서도 사랑과는 조금 달라서 서로 비교하게 되거나 얘기치 못하게 멀어지는 일도 생기니까.

사랑하는 사람과는 평생 함께 살 수 있지만, 우정을 나누는 친구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서로를 아끼고 챙겨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어떤면에서든 우열이라는 게 생겨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작은 질투나 열등감, 우월감 같은 감정이 생겨나거나 작은 일에도 서운함을 느껴 멀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보면, 평생 가는 진정한 우정이라는 게 정말 가능하긴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귀하고 흔하지 않은 감정이 우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사랑보다도 어려운 것이 우정이다.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다보면 누구나 어린 시절 자신이 좋아했던 친구 한 명쯤 기억에서 소환하게 될 것 같다. 나 또한 친구 한 명이 계속해서 떠올랐고, 순수하게 그 친구를 좋아했던, 부러워했던, 같이 있어 행복했던, 질투했던, 미워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고 사는 곳이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그 친구를 생각하니 아쉽고 보고 싶고 어릴 때처럼 앞뒤 재지 않는 순수한 우정의 감정이 낯설고도 그립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넌 공부를 계속하도록 해.
아니. 절대로 멈추지 마. 필요한 돈은 내가 줄게. 넌 항상 공부해야 해.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p.416 <나의 눈부신 친구> 엘레나 페란테

 

나폴리 4부작의 흥미로운 시작점

<나의 눈부신 친구>의 백미는 바로 이런 복잡미묘한 우정을 너무나 섬세하고 다채롭고 흥미롭게 풀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어려운 이탈리아 이름을 가진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에 등장하기 때문에 머릿속이 조금은 복잡하지만 그만큼 진짜같이 살아있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마지막 장을 덮으려는 순간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드라마틱한 반전으로 '띠용'하는 순간까지 선사하면서 다음 권을 어서 펼치라고 부추긴다. 


얼른 나폴리 4부작, 2권인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읽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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