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미래》유현준 :: SF보다 재밌다! 다가올 미래의 공간
- 글쓰기 공방/독서 리뷰
- 2021. 9. 23.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출근이 재택근무 위주로 바뀌고, 등교가 원격 수업으로 바뀌고, 맛집 투어는 배달 위주로 바뀌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어떤 이들은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거라고 예상하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는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코로나를 안고사는 '위드 코로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어느날 갑자기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우리의 공간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미친 듯이 올라버린 집값, 사람이 다니지 않아 빈 점포가 늘어가는 번화가 상점들, 학령인구가 줄어 앞으로 몇 년 내에는 수능이라는 제도가 아예 없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기 시작했다. 도시는 사라지게 될까? 사람들의 생활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공간의 미래를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독자들이 공간에 녹아있는 정치적, 심리적 관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풍부한 배경설명을 재밌게 해 줌과 동시에 거기서 그치지 않고 미래의 방향 제시가 아주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물론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에 기반한 아이디어이지만, 그 주장이 꽤나 설득적이고 실행력 있어 보여 머릿속에 잘 그려진다.
미래의 학교 교육
모든 아이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모여 수업을 듣는 것은 더이상 필수가 아닐뿐더러 이제는 전염병 때문에 위험하기까지 하다. 작은 규모의 위성 학교를 여러 곳에 만들어 운영하면 다양성이 존중되는 개개인 맞춤 교육이 가능하다. 플래시몹처럼 선생님과 5인 정도의 학생이 휴대폰 앱을 통해 수업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소규모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기존의 학교처럼 많은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커다란 운동장이 있는 학교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지역의 다양한 시설을 이용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체육수업은 동네 체육시설을 이용하고, 동네 상가의 비어있는 상가의 위성 학교 교실에 모여 수업을 진행하는 식으로 말이다.
단순한 지식 전달은 동영상 강의로 대체하여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개개인의 맞춤 학습을 진행할 수도 있다. 애리조나 주립대에서는 실제로 이 방식 적용하고 있는데, 이 학교의 회계학과는 학기초에 학생들의 학력을 측정하여 D성적을 받은 학생에게는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교육과정으로 기초부터 차근차근 교육한다. 이렇게 교육받은 학생이 학기말에는 A성적을 받는 경우도 있다.
각자의 관심과 재능에 따라 중3때 고3의 생물 수업까지 들을 수도 있고, 네이처의 최신 논문을 공부할 수 있고, 수학에 재능과 관심이 없다면 기초 수준만 공부하고 끝까지 배우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개개인 맞춤 교육이 진행된다면 개개인이 자신에게 맞는 진로를 찾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고, 모든 학생을 하나의 기준으로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울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여기서 선생님의 역할은 무엇일까? 획일화되지 않고 다양한 교육 과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역할이 변화되어야 한다. 지식전달자에서 교육과정 큐레이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과의 쌍방향 대화를 통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끌어내고 어떤 걸 어떤 식으로 배워나갈지 지도해줄 수 있는 선생님이 필요할 듯하다.
지상에 공원을 만들기 위한 도시의 변화
도시가 발달하면서 땅위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도시가 깨끗하고 아름다우려면 자동차가 최대한 없어야 하고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안전하고 깨끗한 길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도시에서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한데, 저자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자율 주행 로봇 전용 지하 물류 터널'이다. 기존 대도시의 지하에 직경이 작은 터널을 뚫어서 천장고가 낮은 지하 도로망으로 물류 전용 자율 주행 운송로봇이 돌아다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상에는 선형으로 길게 연결된 공원이 조성된다.
가까운 미래의 상상
2030년 서울은 4차선 이하 모든 도로망의 지하 6미터 지점에 직경 3미터의 물류 터널을 구축했다. 이 터널 도로망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서울시 전체의 지형을 고려해 최소한의 언덕길이 만들어지도록 구축되었다. 이 터널은 500미터마다 근처의 건물 지하로 연결되어 그곳에 위치한 물류 창고에 배치한다. 일단 물건이 여기까지 배달되면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걸어와서 이 물걸들을 반경 500미터 이내에 있는 집까지 배달해 준다. 이는 새로운 일자를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가 있다. 주변에 배달해 줄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소형 로봇이 골목길을 통해서 직접 배달할 수도 있다.
아침 9시, 노원구에 있는 소비자가 몇 권의 책과 샴푸와 휴지를 스마트폰으로 주문했다. 유통회사는 도시 외곽의 물류 센터에서 오전 9시 15분에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해서 주문된 물건을 15분 만에 포장한 후 소형 자율 주행 로봇에 실어서 터널로 들여보낸다. 이때 서울의 북동부 지역에 배달을 가는 로봇들은 여러 개의 객차가 연결된 기차처럼 하나로 묶여서 에너지의 효율을 높여 이동한다. 도시로 들어가서 배달지가 가까워지면 각자의 목적지로 분산되어 지선으로 빠지게 된다.
9시 45분, 배달지에서 가장 가까운 위성 물류 기지로 지하 연결 통로를 통해서 들어가 선반에 주문 상품이 배치된다. 컴퓨터는 배달 서비스의 정보를 앱상에 띄운다. 근처를 산책하던 시민이 이 정보를 확인하고 물건을 픽업한 후 걸어서 수취인 집에 배달해 준 시간이 10시다. 그 시민은 산책을 하면서 용돈을 조금 벌었다. 주변을 보면 천천히 걸으면서 이런 배달을 해주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다.
지상의 공간은 어디를 가나 선형의 공원으로 연결되어 있다. 2030년 서울에서는 어떤 물건을 주문하더라도 한 시간 이내에 교통 체증없이 배달된다. 뉴욕이나 런던보다 훨씬 더 편리하고 안전한 도시다. 역사에 없던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에서는 어떤 전염병이 오더라도 사는 데 별다른 불편함이 없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되었다.
유현준 <공간의 미래> 중에서
꽤나 괜찮은 아이디어같다. 물론 이 과정에서 택배기사나 물류 관련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문제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 과정에서 새롭게 파생되는 일자리들 또한 많이 있을 것 같다.
집값 폭등의 정치적 문제
집값이 폭등하고 은행 대출없이 집을 사야 하는 세상이 되면 두 집단은 좋아한다. 바로 대자본가와 정치가들이다. 빈부 격차가 커질수록 자본가는 자본의 집중을 얻게 되고, 정치가는 집을 소유할 수 없어서 임대주택을 구걸하는 표밭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악당을 잡으면 세상이 좋아진다고 믿지만 실제로 세상에는 악당과 그 악당을 손가락질하면서 그 상황을 통해서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챙기는 위선자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악당과 위선자 사이에서 국민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기적인 인간이 만드는 사회에서 권력은 쪼개서 나눠 가질수록 정의에 가까워진다.
돈은 권력이다. 따라서 부동산 자산은 권력이다. 부동산이 정부나 대자본가에 집중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나누어서 소유할 수 있는 사회가 더 정의로운 사회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집값이 끝없이 폭등해 이제 청년들이 자신들이 번 돈으로 집을 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정부는 청년들을 위해 월세를 대출해주는 정책을 펴겠다고 했다. 그건 당장에는 달콤해 보일 수 있지만 청년들을 영원히 월세나 내며 살아야 하는 소작농으로 전락시키는 일이다.
계층의 사다리를 걷어찬것도 모자라 완전히 땅에 묻어버리는 거나 다름없는 것 같다. 정부가 좋은 뜻을 품고 집값을 안정시키려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는 변수로 이렇게 되었다고 보기엔 이젠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 정말 우리는 악당을 피하려다 위선자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는 걸까. 개개인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이유다.
국토 균형발전을 위한 지방도시의 모습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수준은 프랙털 지수 1.4 수준이라고 한다. 완전한 규칙도 아니고 완전한 불규칙도 아닌 적당한 불규칙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숲은 나뭇가지의 모양이 제각각이다. 하지만 모든 나뭇가지는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규칙이 있고 나뭇잎은 모양이 달라도 색상은 녹색으로 통일되어 있다. 불규칙 속에 전체를 아우르는 규칙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을 아름답다고 느낀다.
강북에서 강남을 찍은 풍경과 허드슨강에서 뉴욕의 모습을 찍은 풍경의 느낌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아파트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똑같은 성냥갑이 차례로 서있는 듯 보여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반해, 뉴욕의 빌딩들은 각각 다른 모양과 높이로 적당한 불규칙성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건축물들은 통일성을 추구하며 모두 같은 모양을 하고 있고, 도시를 발전시키는 형태도 서울과 지방이 별 다를 바가 없다.
서울과 지방이 같은 형태로 그 지역만의 특색없이 발전한다면 지방도시들은 여전히 서울의 짝퉁일 뿐이다. 언제든지 돈을 벌면 서울로 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분위기 속에서 지방도시가 크게 발전하기는 힘들다. 이탈리아의 로마와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같은 나라안에 있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닌 도시다. 그 이유는 하나로 통일된 건축 법규가 없어서였다고 한다. 도시들이 각각 구할 수 있는 건축자재와 기술로 도시를 만들었더니 전혀 다른 분위기의 특색 있는 각각의 도시가 만들어졌고, 그것들은 서로 대체될 수 없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제를 하고 있음에도 건축법규는 모두 같도록 규정하고 있어 지방마다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그 지역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고,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특색과 강점이 있는 지방 중소도시들이 늘어난다면 지금처럼 서울만 비대하게 커지는 상황이 조금은 나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19세기에 석탄을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을 때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다. 석유와 수소. 그 당시의 기술적 완성도는 석유와 수소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석유가 수소보다 생산 단가가 아주 조금 싸다는 이유로 석유를 선택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환경위기의 세상이다.
만약에 그 당시 사람들이 현명하게 수소를 택했다면 지금의 세상은 어떻게 됐을까. 역사 중에 어느 시대의 선택이 이후 수백년의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지금이 그런 시대다. 기후 변화와 전염병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백 년 후의 인류 역사를 결정하는 거룩한 책임을 짊어진 세대다.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오늘의 선택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지금 역사의 변환점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 문득 신기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궁금한 마음을 가졌는데 문득 이 말이 가슴을 울린다.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고, 코로나처럼 예고없이 다가온 복병에 속절없이 당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미래를 바꿔나갈 수 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머리 맞대어 고민하고 안 좋은 점은 바꿔나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공간의 미래>는 꼭 일독을 권함 :)
흥미로운 내용이 너무 많아서 추려서 정리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책에 훨씬 재밌는 내용들이 가득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