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톨로지》 김정운 :: 위대한 창조의 비밀은 '편집'에 있다!
- 글쓰기 공방/독서 리뷰
- 2021. 12. 19.
항상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가 넘치는 사람의 뇌는 어떻게 생긴 걸까. 생전 처음 보는 아이디어에서 "엇, 그러네!"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은 생각 자체가 새로운 게 아니라 그렇게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관계성에 놀라게 되는 거 아닐까?
자극을 받아들이는 바로 그 순간부터 창조적 인간과 보통 인간의 차이가 벌어진다.
창조적 인간은 남들이 지나치는 자극을 확 잡아챈다. 위대한 창조는 그렇게 사소하게 시작된다.
김정운 <에디톨로지> 중에서
에디톨로지는 "모든 창조는 편집이다"라는 관점으로 풀어낸 책이다. Editology, 즉 편집학(?)이라고 할 수 있는 용어를 저자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한다. 사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안에서 어떤 관계성을 찾아내고 적절하게 융합해서 나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느냐가 각자의 강점이 되는 시대다. 나도 요즘 많이 고민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들을 무엇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
먼저 김정운 저자의 말에 따르면 '지식이란 정보와 정보의 관계'다. 여기서 좀 더 발전시켜보면 '새로운 지식이란 정보와 정보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의 본질이 '어디선가 본 것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라면, 창의적 사고란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는데서 시작한다.
<에디톨로지> 중에서
요즘 세상은 언제든 인터넷 검색만 하면 모든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시대다. 더 이상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것 자체가 권력이 아니라는 소리다. 지금은 정보와 정보를 엮어서 어떤 지식을 편집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인 세상이다. 같은 정보를 가지고도 어떻게 엮어내느냐에 따라 퀄리티가 확연하게 갈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에디톨로지를 가장 재밌게 지켜볼 수 있는 시장, 유튜브 아닐까?
편집의 재미를 가장 다양하고 직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는 시장이 아마 유튜브 시장이 아닐까. 어떻게 편집해야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고 영상을 끝까지 볼 수 있게 만드는가. 그건 모두 콘텐츠 창작자가 정보를 대하는 색다른 관점과 재미난 편집의 힘이다. 같은 정보를 가지고도 그 정보를 단순히 줄줄 읽어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비슷한 사례들을 엮어서 비교 영상을 만들거나, 나름의 큐레이션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다. 모두가 아는 정보를 가지고 각각의 방식으로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유튜버 이연은 자신이 어중간하게 잘하는 능력 두가지를 합쳤더니 엄청난 시너지가 났다고 밝힌 적이 있다. 바로 그림 그리기와 토크의 조합이다. 이연은 화면에 하얀 도화지를 펴놓고 계속해서 그림 그리는 영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매번 테마에 맞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근데 또 그 이야기들이 또 재밌으면서도 알맹이가 있어서 자꾸 귀 기울여 듣게 된다.
결국 구독자들의 눈과 귀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고, 그 유튜브는 그림에 대한 관심 여부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채널이 되었다. 각각의 영역에서 훨씬 더 뛰어난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림도 어느 정도 그리고, 말도 어느 정도 재밌게 하는 콘텐츠는 잘 없다 보니 자기가 거기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 같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것 같지만 이것 또한 엄청난 에디톨로지라고 생각한다. 틈새를 찾아서 전혀 새로운 관점의 블루오션을 창조한 셈이다.
사람은 언제 가장 창의적일까?
인간이 가장 창의적일 때는 멍하니 있을 때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멍하니 있을 때 생각은 아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가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니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할 때가 있다. 그러고는 그 생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거꾸로 짚어나간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생각의 흐름을 찾아냈을 때, 자신의 그 짧은 시간 동안 날아다녔던 생각의 범위에 놀라게 된다. 보통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창조적인 순간이다.
현대인들이 스마트폰과 SNS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멍한 상태에서 아무 생각이 없도록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인스타의 릴스 같은 숏폼 콘텐츠들은 시간을 통째로 뺏어가는 마약 같은 존재다. 눈길을 사로잡아버리기 때문에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겨를을 주지 않는다. 창의적 인간이 되고 싶다면 책을 읽거나, 아니면 차라리 눈을 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독일에서는 노트 대신 카드에 공부한 내용을 기록한다고 한다. 노트는 차례대로 쓰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한번 쓰고 나면 마음대로 편집하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카드는 배운 정보를 기록한 뒤 나중에 자신의 생각에 따라 자유롭게 분류하고 새로운 생각을 더할 수 있다. 바로 정보의 편집 가능성을 높이는 노트필기 방법인 것이다.
학습량으로 따지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훨씬 많지만, 독일 학생들을 절대 따라가지 못하는 게 있는데 바로 '자기 생각'이라고 한다. 카드 필기를 통해 자기만의 생각을 편집하고 발달시키는 독일 학생들과 달리 우리는 배운 것을 차례대로 필기하고 그것 그대로만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확실히 노트 필기는 생각의 유연성이 떨어지도록 만들 것 같긴 하다.
창의적 인간이 되려면 나만의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
내 이야기가 가능하려면 사용 가능한 데이터가 풍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자유롭게 연결할 때 얻어지는 메타언어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부다. 내가 축적한 데이터를 꼭 써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데이터를 축적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 데이터들에 관한 메타언어를 익히게 되면 데이터베이스의 일차적 목적은 달성된 거다. 이를 나는 '커닝 페이퍼 효과'라고 부른다.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꼭 해야 하는 게 있다면 바로 나만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이다. 좋은 지식을 접하면 그것을 내식대로 잘 정리해서 축적해두는 것이다. 책을 읽고 좋은 구절을 찾아 정리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두는 과정을 지속하다 보면 그 지식들 가운데서 나만이 발견할 수 있는 규칙이 있을 수도 있고, 나만의 새로운 관심사가 생길 수도 있다.
책에 밑줄 긋고 내 생각을 적는 것이 ‘메타-데이터’라면, 이 부분의 사진을 찍어 에버노트에 저장하고 그곳에 핵심 키워드들을 새롭게 적어 넣는 것은 ‘메타-메타-데이터’입니다. 에디톨로지적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편집의 차원’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자의 책에서 일부를 발췌해 데이터를 만드는 것은 ‘편집의 단위’가 확대되는 것입니다. 그 데이터에 키워드를 덧붙이는 것은 그 단위가 도대체 어떠한 맥락에 속하는 가를 정리하는 작업입니다. 책의 빈 곳에 정리된 메타 데이터를 다시 한번 차원을 높여 스스로 정리하는 작업인 것입니다.
이 메타-데이터들이야말로 바로 ‘내 생각’입니다. 내 생각은 ‘메타언어’들을 통해 얻어지는 것입니다. 메타언어가 풍요로워야 나만의 콘텐츠가 분명해집니다.
에디톨로지 일독을 권하며...
에디톨로지는 지식을 연구하는 학자이든,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크리에이터든, 광고 마케팅을 고민하는 마케터든,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배울만한 관점들이 많이 들어있다. 책 내용 군데군데 깨알 같은 유머와 묵직하고 어려운 지식들이 공존하는 책이다. 2014년에 초판이 쓰였고, 2018년에 한 번 개정되었다고 한다. 나는 2018년 최신판을 읽었다.
누구나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고민하지만, 결국엔 내 속에 쌓인 것이 많은 사람만이 그 안에서 새로운 연결성을 찾아 진짜 새롭게 느껴지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법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에디톨로지는 한 번쯤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