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조각집 "겨울잠" 가사 해석 리뷰 :: 듣자마자 눈물이 또르르...
- 덕밍아웃/음악
- 2021. 12. 30.
이 노래는 앞으로 내 눈물 버튼이 될 것 같다.
노래를 듣자마자 눈물이 또르르 흘러 감정 주체가 안되보긴 처음이다. 겨울잠의 앨범 소개글을 읽으면서 노래를 들었는데 첫 소절부터 어찌할 틈도 없이 눈물부터 쏟아졌다. 앞에 앉아있던 나의 반려 고양이가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보드라운 노란 털을 쓰다듬으며 진정하려고 노력해봤지만 계속 눈물이 나서 결국엔 코까지 흥흥 풀며 세수를 해야 했다.
뭐야, 난 아직 너를 잃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부터 슬픈거야. 8살 된 고양이와 살다 보면 가끔 그 시간의 끝을 상상해보게 되기도 하는데, 너무 아득해서 아직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원래는 아이유의 노래 중 '이름에게'가 내 눈물버튼이었는데 이제는 '겨울잠'이 그 자리를 넘겨받을 것 같다. 이름에게가 점점 고조되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가슴을 먹먹하게 하면서 눈물이 맺히게 하는 음악이라면, 겨울잠은 그냥 첫 소절에 KO 되는 느낌이랄까. 누군지 모르는 존재에 대한 알 수 없는 미안함을 담은 노래가 '이름에게'라면, '겨울잠'은 눈앞에서 두 손으로 만져지는 실질적인 존재에 대한 노래라서 더 그런 거 아닐까 싶다. 방금 전까지도 내 몸에 기대어 따뜻하게 조각잠을 잤던 존재.
아이유의 겨울잠 곡소개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나가는 일과, 그런 세상에 남겨지는 일에 대해 유독 여러 생각이 많았던 스물일곱에 스케치를 시작해서 몇 번의 커다란 헤어짐을 더 겪은 스물아홉이 돼서야 비로소 완성한 곡이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혹은 반려동물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서 맞이하는 첫 1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써 내려갈 플롯이 명확해서 글을 쓰기에는 어렵지 않은 트랙이었지만 그에 비해 완성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너무 직접적인 표현을 쓰고 싶지도, 그렇다고 너무 피상적인 감정만을 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녹음 시간이 가장 길었던 곡이다.
평소 레코딩에서는 최대한 간결한 표현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 곡은 굳이 감정을 절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움을 극대화하고 싶은 마음에 곡의 후반부가 아닌 중간 인털루드에 전조를 감행하는 나름의 과감한(?) 편곡을 시도했다. 다른 곡들과는 달리 피아노 기반의 곡으로 담은 것도 그 이유에서다.
내 세상에 큰 상실이 찾아왔음에도 바깥엔 지체 없이 꽃도 피고, 별도 뜨고, 시도 태어난다. 그 반복되는 계절들 사이에 ‘겨울잠’이 있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이제는 정말로 무너지지 않는다. 거짓말이 아니란 걸 그들은 알아주겠지.
앨범 소개에서 자신이 만든 한곡 한곡을 언제나 이렇게 정성스럽고 아름다운 언어로 소개하는 아티스트가 있었나 싶다. 아이유의 앨범은 노래도 노래지만 앨범 소개도 언제나 어여쁘다.
아이유는 '겨울잠'이 사랑하는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나고 혼자서 맞이하는 1년의 계절 이야기를 담은 곡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곡의 가사와 분위기로 봐서는 반려동물을 생각나게 하는데 , 아이유는 아마도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친구들을 생각하며 쓴 부분이 많을 것 같다. 떠나보낸 친구를 생각하며 만든 이전 노래인 '에잇', '봄 안녕 봄'의 연장 선상의 노래이면서 혼자 남아 사계절을 보내고 있는 자신의 시간을 담은 노래가 아닐지. 아니면 그동안에 또 다른 생명과의 헤어짐이 또 있었는지도 모른다.
앨범 소개 마지막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이제는 정말로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 정작 본인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얼마나 여러 번 무너졌었는지 알 수 있다. 하긴 노래를 듣기만 하는 사람도 이렇게 감정이 흔들리는데, 자기감정을 그대로 담아 노래로 만들고 부르는 사람의 감정은 오죽했을까. 하지만 담담하고 아름다운 가사에 고운 마음을 담아 이제는 듣는 사람에게 절절한 감정을 넘겨준다.
겨울잠
작사 : 아이유
작곡 : 아이유
때 이른 봄 몇 송이 꺾어다
너의 방 문 앞에 두었어
긴 잠 실컷 자고 나오면
그때쯤엔 예쁘게 피어 있겠다
별 띄운 여름 한 컵 따라다
너의 머리맡에 두었어
금세 다 녹아버릴 텐데
너는 아직 혼자 쉬고 싶은가 봐
너 없이 보는 첫 봄이 여름이
괜히 왜 이렇게 예쁘니
다 가기 전에 널 보여줘야 하는데
음 꼭 봐야 하는데
내게 기대어 조각잠을 자던
그 모습 그대로 잠들었구나
무슨 꿈을 꾸니
깨어나면 이야기해 줄 거지
언제나의 아침처럼 음
빼곡한 가을 한 장 접어다
너의 우체통에 넣었어
가장 좋았던 문장 아래 밑줄 그어
나 만나면 읽어줄래
새하얀 겨울 한 숨 속에다
나의 혼잣말을 담았어
줄곧 잘 참아내다가도
가끔은 철없이 보고 싶어
새삼 차가운 연말의 공기가
뼈 틈 사이사이 시려와
움츠려 있을 너의 그 마른 어깨를
꼭 안아줘야 하는데
내게 기대어 조각잠을 자던
그 모습 그대로 잠들었구나
무슨 꿈을 꾸니
깨어나면 이야기해 줄 거지
언제나의 아침처럼 음
가사 속 사랑하는 그 생명은 아마도 겨울이 다가오는 어느 때쯤 세상을 떠난 듯하다. 떠난 것이 아니라 겨울잠을 자러 들어갔다고 믿기 딱 좋은 시기. 공교롭게도 설리는 10월, 구하라는 11월, 종현은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너"가 겨울잠을 잔다고 생각하며 계절마다 너를 생각하며 1년을 보낸다. 봄엔 못다 핀 꽃송이를 너 앞에 올려두고, 여름엔 별을 띄운 시원한 물 한잔을, 가을엔 빼곡한 편지 한 장을, 겨울엔 뽀얗게 나오는 입김에다 보고 싶다는 혼잣말을 담아 너에게 보낸다.
사랑하는 네가 떠났지만 여전히 사계절은 눈부시게 예쁘고, 보고 싶은 마음도 꾹꾹 잘 참아왔지만 결국엔 철없이, 또 어쩔 수 없이 네가 보고 싶어 진다. 겨울이 돌아와 다시 추워졌어. 내게 기대어 조각 잠을 자던 그 모습 그대로 잠든 너를 꼭 안아주고 싶은데, 넌 아직 겨울잠을 자는 거지?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거니? 일어나면 이야기해줄 거지? 보고 싶어.
아이유는 아마도 사랑하는 '너'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이렇게 예쁜 봄, 여름을 너랑 같이 누리지 못하고 혼자 보내야 해서 슬픈데 그 와중에 그 계절은 또 너무 아름다워서 더 슬프고 미안하다. 가을엔 그리운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내보지만 내 어떤 문장이 좋았는지 너는 말해줄 수 없다. 겨울이 오자 참고 참았던 그리움이 터진다. 철없이 너무 보고 싶다고 입 밖으로 한숨과 함께 꺼내버린 마음이 하얀 입김이 되어 사라진다.
가사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답고 예쁘고 슬퍼서 진짜 진짜 잘 쓰인 시를 보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아이유가 작사한 곡 중에 최고인 것 같다.
내 생각에 '겨울잠'은 아마도 올해 봄에 냈던 '라일락 LILAC' 앨범에 넣으려다 살짝 안 어울리는 느낌 때문에 빼놓았던 히든카드가 아닌가 싶다. 겨울잠을 듣기에 딱 알맞은 계절, 겨울이 오기까지 일부러 기다렸다가 짠 하고 보여준 거지. 아이유는 노래를 듣는 분위기와 시간을 중시하는 아티스트니까!
거기다 아이유 조각집이라는 완벽하고 귀여운 이름을 달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자신의 조각들을 모아서 20대의 진짜 마지막이 되기 직전에 짠하고 보여준 거다. 올해 봄, 라일락 앨범을 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20대를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정작 20대의 진짜 마지막 순간이 오자 아이유는 뮤직비디오 하나 없이 소박하고 묵직한 자작곡 앨범 한방을 기어이 던지고 간다.
이래서 다들 아이유 아이유 하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