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미드 번역을 위한 공부법 :: 영상 번역가가 되려면?
- 글쓰기 공방/독서 리뷰
- 2021. 4. 17.
얼마 전에 했던 드라마 '런 온(Run on)'에서 여주인공 신세경의 직업으로 '영상 번역가'라는 직업이 나왔다.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영화들을 먼저 보면서 영어를 한글로 번역하거나, 한글을 영어로 번역하는 사람들. 극 중 신세경은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영상 번역 프리랜서로서 집에서 밤낮이 바뀐 채 자기 일에 몰두하며 산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서 그 일로 돈까지 버는 사람들은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가.
극 중 신세경이 너무 예쁜데 영어를 잘하는 걸로 나와서 단순 연기겠거니 생각했는데 그 후, 신세경이 실제로도 영어를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 먹었다. 순수 국내파로 혼자 공부해서 외국인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화르르 영어공부에 대한 욕심이 타올라서 그때부터 나도 영어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외국에서 살다와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을 볼 때는 그래도 "쟤는 살다왔으니까 그렇지."라고 합리화라도 할 수 있지, 순수 국내파로 영어를 잘하게 된 사람들을 보면, 내가 영어를 못하는 이유는 오로지 내 탓인 게 명확해지니까..ㅠㅠ
어쨌든, 신세경은 좀 여러모로 반칙이다!!
<미드 번역을 위한 공부법>은 실제로 박윤슬 영상 번역가가 자신이 미드 번역을 위해 공부한 방법에 대한 내용을 총망라하여 쓴 책이다. 매일 미드로 영어자막, 한글자막을 보면서 살았더니 번역가라는 직업, 나도 좀만 노력하면 해볼 수도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리슬쩍 들었었는데, 역시나 전문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우선 영상 번역가는 영어만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치, 법률, 범죄, 판타지, 시대물 등등 관련된 용어를 수도 없이 정리해서 공부해야 하고, 정치물이나 병 원물에 나오는 수많은 용어와 직책들도 전체적인 그림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사회 트렌드를 반영한 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유명한 사건이나 인물들도 꿰고 있어야 하고, 그 나라의 문화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영어 못지않게 한국어를 잘해야 한다. 한글 맞춤법을 안 틀리는 건 너무나도 기본이고, 그 맛을 잘 살리는 짧고 강력한 표현들을 찾아 다양한 매체에서 수많은 말들을 수집하기도 한다.
미드 번역을 위해서는 본인 자체가 미드를 좋아하고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마니아가 많은 시리즈물 같은 경우는 용어 하나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같은 매체에서 미드를 시즌 통째로 한꺼번에 공개하기 때문에 공동 번역도 많다고 하는데, 그런 경우 인물 사이에 호칭이나 말투도 통일해서 사용하여 여러 사람이 같이 번역한 것도 한 사람이 번역한 것처럼 매끄럽게 맞춰야 한다고 한다. 혼자 일하긴 하지만 팀 커뮤니케이션도 능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신경쓸 것 많고, 공부할 것도 많지만 번역가라는 직업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사람들과 부대낄 필요 없이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직업이면서 전문직이고, 특히나 미드를 죄책감 없이 마구 보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영어실력을 갈고닦을 수 있는 직업이니까.
그렇게 시작한 영상 번역은 너무나도 재미있었어요. 일감이 불안정해서 힘들어하면서도 미드 번역을 놓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드 번역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미드 덕후인 저한테는 이런 꿈의 직업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 미드 번역을 위한 공부법, 프롤로그 중에서>
자기 직업을 이 정도로까지 좋아할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 아닌가?
번역가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적성에만 맞으면 누구보다 즐겁게 일 할 수 있는 직업은 맞는 것 같다.
이 책은 '영어공부 하는 방법' 자체가 알고 싶어 읽은 사람에게는 조금 아쉬울 수 있다. 기본적인 영어실력을 쌓는 공부 방법에 대한 내용은 상대적으로 짧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미드 번역가라는 직업이 궁금해서 읽은 사람에게는 영상 번역가라는 직업이 어느 정도까지 노력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좋은 지침서가 될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번역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좀 더 겁을 먹게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가 가는 직업인 건 여전하다.
혼자서 야금야금 공부해봐야지.... :)